개혁보수 대표주자가 ‘한국당 2중대’ 전락 
 한국당 합류는 민심 배반하는 자해 행위 
 ‘새로운 보수’ 국민 염원 저버리지 말아야 
바른미래당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손학규 대표는 퇴진을 요구하는 유승민 의원계를 향해 “한국당 가려면 혼자 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호남 기반 중도(국민의당)와 새누리당을 탈당한 보수(바른정당)가 합쳐져 이념과 가치가 다른 게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과거 정당들의 넓었던 이념 스펙트럼에 비하면 메우기 힘든 간극으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한국당 2중대’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을 만큼 정체성을 잃으면서 지지율이 급락한 게 근본 원인일 것이다. /뉴스1

파격이었다. 신선했다. 이런 보수 정치인도 있다니, 너무 반가웠다. 2015년 4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첫 교섭단체 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고 선언했다.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ㆍ대기업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이런 보수라면 훌륭한 파트너인 동시에 두려운 상대”라고 평했다.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패거리 정치가 만연했던 새누리당이 ‘책임과 헌신’을 앞세운 유 의원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공천에서 떨어진 그는 무소속으로 당선돼 당에 복귀했다가 끝내 결별했다. 지난해 2월 바른미래당 출범 당시만 해도 유 의원은 개혁 보수의 대표 주자였다. 10%를 웃돈 당 지지율은 중도ㆍ개혁ㆍ실용을 아우르는 ‘새로운 보수’에 대한 국민 기대감의 반영이었다.

그런 바른미래당이 정상적 정당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망가졌다. 손학규 대표와 유 의원은 서로 “당을 떠나라”며 진흙탕 싸움 중이다. 일각에선 이념과 가치가 다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산술적 통합을 원인으로 꼽지만 ‘중도 개혁’과 ‘개혁 보수’를 메우기 힘든 간극으로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거대 양당의 대치 속에 ‘한국당 2중대’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을 만큼 중심을 잃고 흔들린 게 근본 원인일 것이다.

유 의원은 남북 문제에서 태극기 부대와 다름 없는 목소리를 냈고, 경제 문제도 성장중심 정책으로 회귀한 듯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여야 4당이 어렵게 마련한 선거제 개혁을 무산시키려 앞장선 대목도 이해하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표심 왜곡을 막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완화하는 방안이다. 자당에 유리한 선거제를 반대하니 ‘한국당 2중대’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바른미래당 내분의 본질은 가치와 이념이 아니다. 거대 양당처럼 지역 기반이 확실하고 지지율도 높다면 내분이 생길 리 없다. 정의당보다 낮은 지지율로 당선은커녕 당의 존폐마저 위태롭다 보니 각자 살 길을 찾느라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19대 총선처럼 안철수 후광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바른정당계 의원들 다수가 한국당과의 보수 통합으로 기운 배경이다.

유승민의 선택은 뭘까. 그의 처지는 옹색하다. 창당 당시만 해도 보수권 대선 후보 1위였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크게 떨어졌다. 친박 세력에 배신자로 낙인 찍혀 내년 총선마저 위태롭다. 명분만 주어지면 한국당에 합류하고픈 생각이 왜 없으랴. 실제 보수진영에선 ‘빅 텐트론’이 끊이지 않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유승민과 통합 안 하면 한국당 미래는 없다”며 추파를 던지고 있다. 유 의원계가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고 손 대표를 끌어내리려는 것도 보수 통합을 겨냥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의 생명은 명분이다. 유 의원은 ‘새로운 보수’를 명분으로 한국당을 뛰쳐나왔다. 한국당은 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강경 보수층에 영합한 극우 행보를 지속 중이다. 황교안 대표 주변은 친박 일색이다. 내부 고백처럼 한국당은 성찰 없는 수구 정당, 극우만 바라보며 혁신을 거부하는 ‘도로 친박당’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한국당 중심의 반문(反文) 연대로 결집하자는 게 명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유승민의 한국당 합류는 민심을 거스르는 자해 행위다.

합리적 중도와 개혁 보수를 포용하는 제3지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여전하다. 한국당에 투항하는 순간, 배지는 지키겠지만 새로운 보수의 길은 포기하는 셈이다. 한국 정치사는 그런 유승민을 ‘주류 패권에 날 선 비판을 가하던 개혁 보수’가 아니라, ‘반개혁적 수구 집단으로 복귀한 비겁한 정치인’으로 기록할 게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며 ‘진영논리를 넘어선 합의의 정치’를 부르짖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 보수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유승민이 사는 길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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