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투란도트’를 올리는 표현진(39) 연출가는 오페라계에선 드문 30대 여성 연출가다. 그가 이번 작품을 맡으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한국 관중, 특히 오페라 초심자를 매료시키는 방법이었다. 7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표 연출가는 “연출 의뢰를 받은 직후부터 약 7개월여간 가장 긴 시간을 쓴 건 극에 재미 요소를 어떻게 심을지에 대한 부분”이라며 “관객이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무대 구성, 배우 캐릭터 등에서 여러 변주를 줬다”고 설명했다.
표 연출가는 원작자 자코모 푸치니의 배경 설정을 따르되 무대 곳곳에 흥미로운 장치를 배치했다. 푸치니는 1막을 ‘중국 베이징(北京), 전설시대’로 다소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표 연출가의 ‘투란도트’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동양 신화적 요소가 보다 가미됐다. 하늘과 땅이 공존하던 혼탁한 시대가 배경으로, 극 중 인물들이 지상, 천상계로 나뉜 무대를 위아래로 자유롭게 오간다. 원작엔 등장하지 않는 ‘12지신’을 형상화한 관료들도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공연계에선 “원작의 틀을 따르면서도 의미 전달을 보다 명확하게 해 관객이 명쾌한 기분을 갖는 해석을 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수적인 국내 오페라계에서 젊은 여성 연출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해외 유명 연출가와 남성 연출가 비중이 월등히 높았던 이전과 달리 여성 연출가가 크고 작은 무대를 꾸리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오른 작품 6편 중 5편의 연출가가 이회수(45ㆍ가면무도회), 정선영(47ㆍ한국오페라 70주년 오페라갈라) 등 여성이었고, 올해 역시 3개 작품이 김숙영(49ㆍ나비부인), 김지영(40ㆍ달하, 비취시오라), 이혜영(40ㆍ코지판투테_여자는다그래) 등 여성 연출가의 손에서 빚어졌다.
이러한 흐름에는 우선 현장에 대거 진출한 1970~80년대생 해외 유학 세대 가운데 여성 비중이 높다는 시대적 이유가 있다. 여기에 다양한 시각을 원하는 오페라계 안팎의 수요가 작용하면서 여성 연출가들의 등용문이 넓어진 것이다. 실제 오페라 관객 규모가 한정된 국내에서 시장을 넓히려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과거부터 적지 않았다. 예술의전당이 표 연출가를 낙점한 배경에도 이 같은 고민이 깔려 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전통적 방식과 새로운 시도를 넘나들 줄 아는 젊은 연출가들이 다수 필요한 때”라며 “‘투란도트’ 역시 표 연출가의 손에서 세련되고 설득력 있게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역동적이고 유연한 오페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여성 연출가들의 활약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유형종 음악ㆍ무용평론가는 “과거에는 여성 연출가에 대해 ‘카리스마가 없다’는 편견이 덧씌워져 연출이나 지휘를 맡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며 “최근엔 배우의 자연스러운 아리아와 안무를 통해 딱딱하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게 관건이 됐기 때문에 여성 연출가들의 장점이 크게 발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젊은 연출가들이 세계적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도 장점으로 통한다. 이회수 연출가는 “무대 구성이나 의상, 대본이라는 텍스트에 대해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젊은 여성 연출가들의 방식을 현장에서 좋게 평가해 주는 것 같다”며 “비단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성악이나 연출뿐 아니라 무대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갖췄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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