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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베의 가부키(歌舞伎) 정치

입력
2019.08.0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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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의 'NO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新宿) 아루타 마에에서 반(反)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한국 시민의 'NO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新宿) 아루타 마에에서 반(反)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국제 사회에서 ‘대의(代議)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고 정책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는 다수 국민 의견을 수렴하되, 소수도 배려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이 원론적 의미의 대의 정치다. 하지만 인종ㆍ이민자 차별을 당연시하는 등 소수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국제 질서를 교란하는 극우 포퓰리즘 공약으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통치 방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 ‘가부키(歌舞伎) 민주주의’는 미국 네이션지의 칼럼니스트 에릭 알터만의 저서에 나온 용어다. 가부키의 어원은 한쪽으로 기운다는 뜻의 가부쿠(かぶく)에서 유래했다.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특이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알터만은 “대의 민주주의가 퇴색하고 있고, 특히 일본은 ‘가라오케 민주주의’에서 ‘가부키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다. 가라오케 민주주의는 어떻게 공동으로 이익을 배분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지만 가부키 민주주의는 지도자와 시민 사이에서 직접 접촉을 통해 공감을 얻는데 초점을 둔다”고 했다.

□ 일본의 유명 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가 편집한 ‘현대 일본정치’에 따르면 가라오케 정치는 관료 전문가 중심, 합의 중심의 유기체적 정치로 통상적인 일본의 정치 형태다. 관료주의가 강한 일본 정치체제 특성상 관료들이 만든 가라오케의 노래 목록에서 정치인들이 선곡하고 스크린의 안내에 따라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베의 정치로 대표되는 가부키 정치는 개인주의적ᆞ군국주의적 요소가 강하고, 대중이 참여자가 아닌 관람자로 전락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 ‘노딜 브렉시트’를 고수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선언한 아베 총리 모두 자국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는 방식으로 이웃나라나 무역질서에 피해를 주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특히 아베 총리는 과거사 반성 없이 우리를 되레 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일본의 재건을 꾀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 괘씸하다. 국가 이익이 최우선인 최근의 국제 질서에서 생존하려면 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곱씹어야 할 때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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