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ㆍ합병ㆍ징검다리… 교회들 갖가지 방법 동원 목사 대물림
“돈·권력 좇는 무리에 경고”… 명성, 판결 이행 여부는 불투명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5일 등록 신도 수 10만명이 넘는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의 부자(김삼환ㆍ하나 목사) 세습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했다. 교단이 한국 대형 교회의 불법적인 세습 관행에 스스로 제동을 건 것이다.
대형 교회의 목회직 세습 관행은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6일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159개 교회가 가족 세습을 했다. 이중 92개 세습 교회가 신도 수 500명 이상인 중대형 교회였고, 2010년 이후 세습이 본격적으로 이뤄져 왔다. 충현교회, 광림교회, 소망교회, 금란교회, 강남제일교회 등에서 공공연히 이뤄졌던 부자 세습은 2012년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을 후회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들끓는 여론에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예장통합이 교단 중에서는 처음으로 ‘세습 방지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법망을 피한 변칙적인 세습이 횡행했다. 아들에게 지교회를 설립해 담임을 맡도록 하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 세습, 할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에서 손자가 목회지를 승계하는 징검다리 세습 등이 활용됐다. 명성교회는 아들에게 새 교회를 세워주고 시간이 흘러 합병을 추진하는 합병 세습 방식을 택했다. 김삼환 목사가 2015년 정년 퇴임한 후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의 새노래명성교회(2014년 경기 하남시에 설립)를 합병했다. 2017년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의 담임목사 청빙안을 의결했다. ‘은퇴하는’ 목사는 자신의 가족에게 목회지를 넘길 수 없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헌법 규정을 교묘히 피해갔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세습의 뿌리는 결국 재정, 권력과 연결돼 있다”며 “교회 시스템이 투명해지지 않는 한 이 같은 변칙적 세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5일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의 판결은 대형 교회의 세습 관행이 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선례가 됐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는 6일 성명을 통해 “총회 결의와 준엄한 법의 가치를 따른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의 의미는 교단 헌법의 세습불가 조항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데 있다”고 평가했다.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실행위원장도 “대형 교회들이 돈과 힘으로 한국 교회를 더럽히고 추락시키는 위험성에 대한 중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이용혁 서울 동남노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교단 내 가장 큰 교회인 명성교회에 대해 재판국이 법리대로 판단한 당연한 결과”라며 “교단 내 더 이상 세습은 안 된다고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총회 재판국의 판결로 명성교회 세습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명성교회의 판결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음달 23일 열리는 예장통합 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승인되면 명성교회가 속한 서울 동남노회로 판결 이행 통보가 전달된다. 서울 동남노회 지휘 하에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이 이뤄진다. 하지만 명성교회 세습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둘로 쪼개졌던 서울 동남노회가 지난달 말 새로 꾸려졌는데, 대부분이 명성교회 세습에 우호적이었던 임원들로 구성됐다. 일각에서는 서울 동남노회의 묵인 하에 김하나 목사가 계속 담임목사 직을 유지하거나, 명성교회가 노회에서 탈퇴해, 다른 노회로 옮겨 판결 이행을 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음달 열리는 예장통합 총회에서 세습금지법 개정안과 폐지안을 상정해 총회 투표에 부쳐 세습을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명성교회가 판결에 불복하더라도 교단이 판결 결과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교단 헌법에 불복에 대한 강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예장통합 관계자는 “노회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단에서 별도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동남노회 내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명성교회 관계자는 “예상 밖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명성교회의 주권은 교인들이 쥐고 있는 만큼 내부적으로 검토 후에 입장을 밝힐 생각이다”고 사실상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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