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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주 사케 와인

입력
2019.08.0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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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치권에서 음식 원조 논쟁이 벌어졌다. 야당 대변인이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 영공을 침범한 날 대통령이 횟집에서 ‘스시’ 식사를 했다며 날짜까지 틀려가며 비난하는 바람에 ‘스시’와 ‘회’의 차이와 유래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얼마 뒤 여당 대표가 일식당에서 ‘사케’를 먹었다고 야당이 공격하자, 여당은 국산 ‘청주’였다고 반박했다. SNS에서는 청주와 사케 제조법 차이에서부터 사실은 ‘사케’의 어원이 우리말 ‘삭히다’에서 비롯됐다는 출처 불명의 주장까지 난무했다.

□ 어처구니없는 공방을 지켜보다 9년 전 일본 나가사키 방문 때 ‘나가사키 짬뽕’ 원조집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서울의 일본식 주점에서 맵지 않은 진한 국물의 나가사키 짬뽕이 인기 메뉴였던 까닭에 오래된 목조건물의 일본 라멘집을 상상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사해루(四海樓)’라는 이름의 중국 식당이었다. 중국 식당에서 짬뽕을 파는 게 당연한데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 그 몇 해 전에도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현지 와인 판매점에는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다양한 백포도주 사이에 사케가 전시돼 있었다. 병 모양도 포도주병과 같고, 표기도 ‘rice wine’이어서 판매점을 찾은 미국인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야 1980년대부터 오제키(大關) 겟케이칸(月桂冠) 등 일본 유명 사케가 캘리포니아산 고품질 쌀로 제조돼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불어 사케에 어울리는 다양한 서양 요리가 많이 고안돼 서구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 오랜만에 듣는 극일(克日)이란 말에 ‘아직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본은 외래 문물을 적극 수용해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거나, 고유 문화에서 보편성을 찾아내 세계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뛰어나다. 반면 우리는 극일 구호 아래 일본 것을 배척하고 깎아내리는 데만 머물러온 것은 아닐까. 극일은 ‘NO일본‘ 깃발을 거리에 내거는 것이 아니다. 청주와 사케를 놓고 논란을 벌일 게 아니라 청주 품질의 고급화와 세계화 전략을 다듬어 사케보다 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일본인들도 즐겨 마시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극일이라 할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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