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뚫는 갑옷이라는 의미의 천산갑(穿山甲)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영명은 팡골린(pangolin), 말레이어로 “구르는 녀석”의 의미입니다. 포유류 중에서는 아르마딜로와 함께 비늘형태의 등껍질을 가진 동물이죠. 흰개미나 개미를 먹기에 과거에는 개미핧기 등과 같이 분류해왔으나 최근 유전자 연구 결과 오히려 식육목에 가깝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각각 4종씩 모두 8종이 남아 있죠. 2014년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이 8종 모두 멸종위기 등급을 상향 조정한 바 있습니다. 전 세계 야생 개체수가 21년 만에 기존 개체수의 20% 이하로 몰락해버린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인 지난 6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던 목재 운반선박이 싱가포르에 들렸죠. 중국 측으로부터 사전에 연락을 받은 싱가포르 세관은 수색에 들어가 시가 572억 원 어치로 추산되는 천산갑 비늘과 코끼리 상아를 적발했습니다. 총 11.9톤의 천산갑 비늘이 발견되었고 이는 2,000마리 이상의 천산갑 죽음을 의미했죠. 같이 발견된 8.8톤의 아프리카코끼리 상아는 155억 원 규모에 해당했고, 이는 총 300마리 코끼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싱가포르 세관당국은 올해 4월까지 천산갑 비늘을 37.5톤을 압수하였죠. 이중 14톤은 나이지리아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하던 컨테이너 운반선에서 적발된 것입니다. 올해 2월 홍콩에서는 나이지리아에서 출발한 천산갑 비늘 8.3톤이 적발되었고 2017년 6월 인도네시아에서 1.3톤, 7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에서 1만6,000마리 규모의 비늘이 확인되었습니다. 나이지리아나 콩고발 천산갑 밀수가 뜻하는 것은 이제 동남아시아 개체군이 거의 궤멸되고 있기에 그 마수가 아프리카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 배에 한 마리만 낳는 습성과 더불어 독특한 생태로 인해 인공사육이나 번식이 극히 어려운 동물입니다. 나아가 다시 풀려나는 동물들도 이미 많은 질병에 시달려 사실은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지요. 즉 멸종위기에 처한 이후 다시 되돌리기 매우 어려운 종이라는 것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천산갑 비늘과 고기가 콩팥질환, 천식이나 암, 류머티즘 치료에 좋다고 믿거나 고급 식재료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수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냥 우리 손톱과 같은 케라틴 조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수많은 약재와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고작 미신이나 한 그릇 음식을 위해 특정 종들을 지구 역사에서 없어질 규모로 학살한다는 것은 인류가 지구에 짓는 큰 죄업일 것입니다. 모두 중국이나 베트남,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하여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천산갑 이외에도 많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특이 동물을 키워보겠다는 욕심으로 우리나라에도 밀반입되고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수많은 압수된 멸종위기종들도 대개 그러한 목적으로 밀반입된 것입니다. 태어나 30일도 채 되지 않은 비단원숭이를 반입하고, 물지 않도록 마취도 없이 송곳니를 펜치로 끊고 밀반입한 늘보원숭이, 도저히 집 안에서는 키울 수 없는 영장류인 긴팔원숭이를 사육하고자하는 모든 욕심이 저 처참한 천산갑의 슬픔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비겁한 행태를 지금이라도 우리 인류가 끊어내지 못한다면 ‘나그네비둘기’와 ‘도도’와 같이 우리 후세대는 천산갑을 겨우 그림이나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균형이 틀어진 시대가 올 것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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