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감은 많은 현대인에게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 모두 이 도전으로 노인과 간병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모든 사람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의 작년 발언입니다. 저 말 속의 ‘도전’은 무엇일까요? 바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던 장관을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외로움 담당 장관이지요.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 및 시민사회 장관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위의 발언은 그녀의 임명 이유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나왔던 것이고요.
이 임명이 여러 국가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특이한 장관이 생겼다.’는 신선함도 있지만,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공식 선언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임명 한 달 전에 발표된 ‘조 콕스 고독 위원회’의 보고서가 이를 잘 대변해 줍니다. “외로움의 위험성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유사하며, 이 고통을 겪는 이들은 영국 내 900만명에 달하므로, 개인적 불행에서 사회적 전염병으로 확산되었다고 본다.”는 겁니다. 이 보고서는 외로움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는 오랜 관념을 벗어나 이제는 공공 행정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 옳다는 제언이었고, 담당 장관 배정은 사실 이에 대한 여러 반영 중 하나였지요.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영국만의 특징은 아닐 겁니다. 외로움 장관 임명 뉴스를 10개 이상의 매체에서 보도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화가 진행된 국가들입니다. 해당 국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현상이라 비중 있게 다룬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일 테고요. 그래서일까요? 국내에서도 올해 신선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부산시의회 박민성 의원이 외로움 치유 관련 조례를 대표 발의해 지난 5월 최종 심의까지 거쳤습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시민 외로움 지표를 개발 관리하고,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 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외로움 역시 하나의 사회적 측정 지표로써 정책과 행정에 반영하겠다는 것도 새로운 시도였습니다만,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발의 시 했던 박 의원의 발언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독사 예방이 주로 취약계층에 집중돼 안부 확인 등 소극적인 정책에 치중됐는데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꾸어 외로움을 치유해 사전에 사회적인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 이 발언에서는 여러 가지 인식 변화가 내포돼 있습니다. 첫째로 고독‘사’가 아닌 고독감 그 자체로 접근 범위를 넓힌다는 점. 두 번째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마음 건강 문제에 대해 사후 치료나 조력이 아닌, 예방 차원의 접근을 확대하겠다는 점입니다. 고독‘사’와 고독‘감’은 그 적용 범위에서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지금까지는 응당 노년층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고독감으로 포커스를 바꾸는 순간 생애 주기에 따라 접근이 매우 다양해질 여지가 있습니다. 취업 및 진학을 통한 신규 전입 청년의 사회적 적응 문제, 사회적 관계망은 다양하나 정서적 관계망이 취약해 발생하는 중년 고독 문제, 노인의 물리적 고립을 보완하는 커뮤니티 케어 등으로 다각화될 여지가 있는 것이지요.
슈바이처는 일찍이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더군요. 그가 살던 당시보다 지금의 우리에게 더욱 와 닿는 말 아닐까요.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얼마나 다양한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고독감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만큼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이상 ‘외로움 조례’나 ‘장관’이 특이한 뉴스가 아닌 때가 말이지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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