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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일본의 급소 ‘지소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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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일본의 급소 ‘지소미아’

입력
2019.08.05 18:00
수정
2019.08.05 18: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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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북한 핵ㆍ미사일 공포 상상 초월

아베의 집단 자위권 추진에 날개 달아 줘

한일 정상화 시 재체결 ‘조건부 파기’ 어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당시 한민구(오른쪽)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당시 한민구(오른쪽)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의 북한 핵과 미사일 공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2017년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일본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을 때는 ‘J얼러트’라는 긴급경보시스템이 발령됐다. 시민들이 대피하고 신칸센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 재난에 워낙 민감한 데다 태평양전쟁 시기 원폭 참상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때문이다. 굳이 비대칭 무기가 아닌 재래식 전력만으로 남한 전체가 전장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공포에 짓눌려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북일 국교 정상화’를 꼽는 것도 이런 근원적 위협의 제거에 목적이 있다. 수교 협상이 재개되면 한일청구권협정 때보다 훨씬 많은 보상금을 내고 강도 높은 식민지배 사죄의 뜻을 표명할 자세가 돼 있는 듯하다. 북한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에 “적반하장격인 파렴치한 처사” “섬나라를 통째로 팔아 갚아도 모자랄 판에”라는 등의 비난을 연일 퍼부어도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침묵하는 배경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무릎을 꿇리려는 일본이 유독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매달리는 모습에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들로서는 생존과 관계된 중대한 사안이다. 한국은 한 개도 없는 정찰위성을 6개나 보유하고, 이지스함, 공중조기경보기, 해상초계기 등 다양한 정보자산을 더 많이 운용하는 일본의 정찰 능력이 외형적으로는 우수해 보인다. 하지만 위성의 해상도가 낮고 함정과 항공기를 이용한 정보 수집능력은 먼 거리 탐지가 안돼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정보도 휴민트(인적 정보)와 결합하지 않으면 반쪽 정보에 불과하다.

탈북자와 북중 접경지역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한 휴민트는 일본이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한국만의 정보 자산이다. 백두ㆍ금강 정찰기로 수집하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ㆍ영상정보도 강점이다. 더구나 한국은 한미연합사를 통해 미군 정찰위성과 U2 정찰기가 찍은 고급 영상정보를 수시로 제공받는다. 한일 간 군사정보의 가치는 비교조차 안 된다.

일본의 지소미아 집착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베가 그토록 바라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군사대국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중국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아ᆞ태 재균형 전략의 바탕은 한미일 MD(미사일 방어)고, 여기엔 한미일 3자 정보공유가 필수다. 중국과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일본의 자위권 행사와 전쟁가능 국가화를 용인하는 미국의 의도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게 아베의 속셈이다. 지소미아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도와주는 게 아닌지 국익 관점에서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

애초 지소미아 체결 과정에서 이런 논의는 발붙일 틈이 없었다. 밀실협상 논란으로 이명박 정부 때 무산된 것을 박근혜 정부는 ‘기만전술’로 해치웠다. 정부의 협상재개 선언에서 체결까지 단 27일이 걸렸는데, 진행 상황은 철저히 비밀이었고, 나중에 서명식도 비공개로 했다. 국회 논의 등 공론화를 피하려고 양국 국방부 간의 약정 형태로 추진됐고 협정문도 한참 뒤에야 공개됐다. 조기 타결을 원한 군사정부의 대일 비밀협상으로 누더기가 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재판이다.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대응 카드로 공개 거론하자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한미일 협력체제 손상 우려는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소미아의 가장 큰 수혜자인 미국은 우리의 중재 요구를 외면하고 일본은 연이어 경제보복을 하는데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실학자 안정복은 서희 장군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먼저 적과 싸워 본 뒤에 협상을 해도 늦지 않는다. 그 기세만 보고 놀라 화친을 구하면 적의 업신여김이 끝도 없다.”

경제보복 조처를 먼저 안보와 연관시킨 건 일본이다. 지소미아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일본의 급소다. 전면 파기가 걱정된다면 한일 관계가 정상화됐을 때 다시 체결하는 조건부 파기는 어떤가.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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