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시집 발표… 파격과 일탈의 시어 여전
장정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스물 여섯의 청년 장정일이 발표한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도시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것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시인은 당시 최연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가가 되기도 했다. 시인의 언어는 이후 희곡과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그러나 음란물 제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 늘 ‘파격’ ‘일탈’ ‘자기파괴적’이라는 문제적 수식어가 따랐다.

‘시인’ 장정일이 신작 시집(‘눈 속의 구조대’)로 돌아왔다. 1991년 ‘천국에 못 가는 이유’이후 28년만이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고 30여년이 지나 시인은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됐다. 그러나 그의 ‘전위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세상을 향해 “예, 예, 꼴리는 대로 부르셔요. 나는 김수영 장정일입니다. 포르노 작가라고 비웃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올시다”(‘양계장 힙합’)라고 외친다.

달라진 시대만큼, 그의 현실인식도 바뀌었다. “의붓아버지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여중생” “비트코인에 등록금을 털어 넣고 연탄을 피운 대학생” “연예인에게 악플을 달고 고소를 당한 실직자”(‘눈 속의 구조대’)가 사는 시대에서, 그는 “모두 살아남고/나 혼자 죽었으면”(‘당신이 곁에 있어도’)하고 바란다. “먹고 죽게 약 좀 줘/아무도 괴롭히지 않고/물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갈게”(‘힙합’)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현대’란, “죽었다는 신이 자꾸 새로 생겨나/구조대가 찾지 못하는” 시대다(‘눈 속의 구조대’).

낡고 병폐한 문단은 시인의 대표적인 조롱의 대상이다. 그는 “1990년 이전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시인”(‘양계장 힙합’)이라고 말하고, “민족시인만큼 실속 없는 것도 세상에 또 없을 거야”(‘민족시인 박멸하자’)라며, 권위와 수식으로 대변되는 기성문단에 반기를 든다. “돈을 받고 등단을 시켜 주는 문예지와 돈으로 작가가 되려는 이들을 욕하지 맙시다”(‘月刊 臟器’)라고 문예지들의 등단장사를 반어법으로 꾸짖기도 한다.

시집에는 그 흔한 시인의 말도, 작품해설도, 추천사도 없다. 10년 전부터 언론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일보에 격주 연재 중인 ‘장정일 칼럼’에서 동성애와 여성혐오 등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최전선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엿볼 수 있다. 시집에는 이러한 시인의 ‘낡지 않음’이 그대로 담겼다. 굳이 해명이나 해설이 필요치 않은 이유일 것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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