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위안부 관련 책 펴내는 민병갑 뉴욕시립대 교수 
 “정부, 미국 시민사회 연대 통해 日압박 전선 넓혀 나가야” 
민병갑(가운데)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석좌교수가 지난 4일 나눔의 집을 찾아 강일출(왼쪽)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와 손을 꼭 잡은 채 반갑게 재회하고 있다. 미국에 거주 중인 민 교수는 2001년부터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눔의 집을 찾고 있다고 한다. 나눔의 집 제공

2016년 4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의 홀로코스트센터에 마련된 강연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2)가 일본군이 저지른 성폭력과 인권 유린의 만행을 담담히 증언하자, 이를 지켜보던 미국 시민들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한 백인 여성은 할머니들과 동행한 한국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한국인에게 저런 아픈 역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일본 회사가 만든 자동차를 샀다.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가해국의 국민이 아닌 데도 그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시 할머니들의 통역을 도왔던 민병갑 뉴욕시립대(CUNY) 퀸즈칼리지 석좌교수도 그 백인 여성의 사과를 직접 받았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일보사를 찾은 민 교수는 “그 미국인 여성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일본의 만행에 분노했고, 그런 사실을 몰랐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며 “미국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눈을 뜨고 관심을 쏟을수록 일본은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갑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교수가 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미국에서 한인커뮤니티 등 이민자 연구를 해온 민 교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반드시 영문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방법은 피해자들의 증언 간담회 중심이었다. 그러나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240명 중 5일 현재 20명만 생존해 있다. 더 이상 고령의 피해자들의 증언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출간된 위안부 관련 영문판 서적으로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사라 소 교수의 ‘위안부(Comfort Women)’가 있지만, 제한된 소재와 일부 편향된 관점으로 쓰여져 일본군 위안부 실태를 제대로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 여름 출간될 민 교수의 책 ‘위안부 수용소의 잔혹한 참상’(가제)은 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게 특징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간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3명의 증언을 담은 위안부 증언집 8권과 민 교수가 한국에서 별도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22명) 자료를 토대로 피해 실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민 교수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지렛대로 미국 시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미국 정부와 세계 여론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보편적 인권과 가치를 외면하는 태도를 고수할수록 미국 시민들의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지자체는 물론 기업들을 총동원해 위안부 기림비 설치 등을 막아서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하고 있지만, 미국 시민들은 ‘떳떳하지 못하니까 숨기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며 “일본의 여론전이 역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위안부 기림비(현재 13개)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정부를 향해서는 위안부 문제만큼은 ‘진정한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란 원칙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며 정공법을 주문했다. 민 교수는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일본 차를 사지 않겠다’는 백인 여성의 분노처럼 미국 시민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일본을 외면하는 일”이라며 “미국 시민들과의 연대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전선을 넓혀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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