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살인사건, 우발성 인정에도 시신 훼손 범인에 무기징역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제주=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ㆍ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은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계획 살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살인죄 형량이라도 낮추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은 9년 전 유사 사건에서 ‘우발적 살인’을 인정하면서도 ‘참혹한 시신훼손’을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적이 있다. 생명 경시 사건에 대해 ‘계획 살인’ 여부와 별개로 중형을 선고한 전례를 감안할 때 고씨의 전략이 먹혀들지는 불투명하다.

9년 전 부산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도 엽기적이었다. 당시 피고인 김모씨는 200만원 상당의 훔친 수표를 돌려달라는 건물주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고물상을 운영하던 김씨는 살해한 피해자를 드럼통에 넣고 대형 버너로 끓이는 참혹한 방식으로 시신을 훼손한 뒤 낙동강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체훼손 방식이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터라 수사와 재판과정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재판에서 김씨는 고유정처럼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를 살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사체를 끓여 훼손한 후 강물에 던져 은닉해, 사체훼손의 방법이 극히 잔혹하고 엽기적이어서 살인죄만을 저지른 경우에 비해 불법의 정도가 매우 크고, 극악무도한 범행”이라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강도살인의 당시 양형기준은 징역 8년에서 11년이었지만 ‘사체손괴’를 특별가중요소로 적용한 것이다. 2, 3심 또한 “사체를 훼손하고 강물에 던져 은닉하는 등 범행이 잔혹하고 엽기적”이라면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

우발적 살인사건에서도 사체손괴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하는 게 판결 경향이다. 앞서 올해 1월 춘천지법은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한 사건에서 “계획적 살인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사체손괴가 특별가중요소에 해당하므로 계획 살인이 인정되는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권고형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수사과정에서 범행 수법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고유정의 경우도 엽기성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감자탕 뼈 버리는 법' ‘뼈의 강도’ 등을 검색하거나 들통, 버너 등을 사전에 구입하는 등 김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도 양형기준상 가장 형량이 높은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징역 2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고유정 재판도 김씨 재판과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김씨 재판처럼 우발적 범행을 인정하더라도 참혹한 시신 훼손ㆍ은닉 사실이 입증된다면 재판부가 '사체손괴' ‘사체유기’ 등의 가중요소를 인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물론 법원이 “성폭행에 저항하다 수박을 자르려던 식도로 찔렀다”는 고유정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양형기준상 ‘참작 동기 살인(징역 4~6년)’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고유정 사건을 맡은 제주지법이 피고인 측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고유정의 전략이 난관에 부닥쳤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제주지법은 지난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마치 살해를 준비한 듯 졸피뎀, 혈흔, 뼈의 강도 등의 단어를 검색한 이유를 다음 재판까지 설명하라”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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