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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세워질 ‘공덕비’

입력
2019.08.06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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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매천도서관. 구례군청 제공
전남 구례군 매천도서관. 구례군청 제공

매천 황현(조선 후기 학자ㆍ1855~1910) 선생이 오늘 ‘이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 28일, 매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 전남 구례군에 개관했다. 매천도서관. 이 도서관은 구례에 건립된 첫 번째 군립 도서관이다. 그때까지 구례에는 1973년 개관하여 1993년 신축 이전한, 전남교육청 소속의 ‘구례공공도서관’만 있었을 뿐이었다.

구례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 구례에도 좋은 도서관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어린이가 책과 함께 꿈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는 도서관, 청소년이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할 수 있는 도서관, 어른이 휴식과 소통의 행복을 누리는 도서관, 누구나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도서관이 있다면, 구례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런 열망과 간절함이 군수와 교육감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군과 교육청은 각각 더 좋은 터에 더 좋은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전남교육청은 ‘구례공공도서관’을 초중고 학교 다섯 개가 밀집해 있는 읍내 중심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구례군도 ‘매천도서관’을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부지였다. 두 도서관이 모두 ‘봉남리 99의 4번지’(5,162㎡)에 지어진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좋은도서관모임’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했다. 운영 주체가 다른 도서관이 한 부지에 각각 들어선다면, 분리된 공간에서 이용자들은 엇갈릴 것이고, 자료는 중복될 것이고, 운영도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공청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군수와 교육감과 교육장을 면담하고, 읍내에 통합설계, 통합운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고, 도서관문화제를 열었다. 구례주민의 풀뿌리 도서관 운동은 과연 120여년 전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았던 상황 속에서도 매천 선생과 함께 호양학교를 건립했던 구례주민다운 것이었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장석웅 전남교육감을 만난 뒤(2019년 4월 17일), “구례에 신설하는 도서관의 설계, 시공, 운영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자랑스러운 도서관을 만들고자 합의”하였다고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도서관 행정은 지자체와 교육청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는 오래 묵은 병폐다. 그렇기에 군과 교육청이 합의하여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도서관을 건립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랑스러운 도서관’의 첫 번째 사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 구례군은 통합설계, 통합운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라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민과 관이 마음을 합치고, 군과 교육청이 지혜를 모은다면, ‘자랑스러운 도서관’을 건립할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이런 ‘공덕비’ 하나 세워질까 두렵다. “여기 불통 행정과 민주적이지 않은 지역정치, 행정 편의주의의 표본이 있다. 주권자 민주주의 시대인 21세기에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를 만들어낸 행정 책임자와 담당자의 이름을 이 돌에 새겨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이 비를 세운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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