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조적 욕망과 충동의 화신, 윌리엄 블레이크의 기일이다.

18세기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였지만, 역설적으로 몽상의 미학적 반(反)이성과 몽매의 주술적 비(非)이성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시대이기도 했다. 뉴턴역학과 데카르트의 철학 반대편에는 메스머의 최면술과 바라터의 관상학에 매료된 대중이 있었고,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기적을 ‘심오한’ 화학으로 설명해보려는 신학적 발버둥을 틈타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회가 뿌리를 뻗어 나갔다. 이사야 벌린은 그걸 “일관되고 우아해 보이는 표면 밑”에서 번성한 “온갖 종류의 어두운 힘들”이라 표현했다. 물론 그에게 그 어두운 힘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욕망’과 ‘무의식적인 충동’은 낭만주의의 힘찬 에너지원이었다. 그리고, 몽환적 화가이자 신비주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1.28~ 1827.8.12)는 그 에너지의 화신이었다.

블레이크는 단테의 ‘신곡’에 그린 삽화로도 유명하지만, 성스러움과는 사뭇 동떨어진 성서 모티프의 악마적 그림들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릴러 영화 ‘양들의 침묵’의 드라마 버전 ‘한니발’에서 한니발의 추종자 달라하이드(Dalarhyde)의 등 문신이 블레이크의 작품 ‘위대한 붉은 용’(1805)이었다. 그는 당대에는 그림으로도 시로도 별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20세기 들어 낭만주의가 새롭게 주목 받으며 예술사적 가치를 인정 받았고, 드라마가 그의 그림을 조명했듯이, 문학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시를 적극적으로 소환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이폰을 출시한 직후인 2007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순도 높은 반과학ㆍ반이성주의자인 블레이크의 시에서 창의적 영감을 얻곤 한다고 말했다.

벌린에 따르면 블레이크는, 18세기 시대정신의 대변자인 로크와 뉴턴을 최대의 악당이라 여겼다고 한다. “현재 증명되는 모든 것은 한때는 오직 상상된 것”이라고 했던 블레이크로서는, 증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계몽주의자들이야말로 ‘정신을 살해한 악마들’이었다. 4살 무렵부터 환상을 통해 신과 악마를 만나곤 했다는 그는, 그러니까 학습된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생래적 낭만주의자였다. 그에게 환상은, 스티븐 킹의 소설 속 세계처럼 그 자체가 현실이었고,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을 것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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