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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존 경제체질 개선 설파한 ‘한국 벤처의 아버지’ 이민화 교수 갑작스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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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존 경제체질 개선 설파한 ‘한국 벤처의 아버지’ 이민화 교수 갑작스레 별세

입력
2019.08.04 16:35
수정
2019.08.04 18: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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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업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케이스쿨(K-school) 겸직교수의 별세 소식에 주말 내내 애도가 이어졌다. 기업인들과 학자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국내 산업 전반이 위기를 맞은 엄중한 시기에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설파해온 고인의 소신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일 부정맥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고 이민화 교수. 페이스북 '이민화의 벤처에세이'
고 이민화 교수. 페이스북 '이민화의 벤처에세이'

특히 다음 학기에 그가 직접 기획한 강의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KAIST 케이스쿨은 이 교수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강의를 준비해온 성광제 KAIST 케이스쿨 교수는 “획기적인 방식의 강의인 데다 수업 내용을 (이 교수가) 직접 짜고 있어서 학교에서 기대가 컸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 교수는 발이 넓기로 유명했다.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그는 다양한 벤처기업을 학교에 초청해 학생들과 함께 사업을 분석하고 발표와 토론을 계속 이어가는 ‘해커톤’ 방식으로 해당 기업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업으로선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확보할 수 있고, 학생들에겐 창업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벤처기업과 미래 창업자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시도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이 교수의 신념과 일맥상통한다.

‘벤처’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1985년 이 교수는 한국 첫 벤처기업인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창업했다. 이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과 코스닥 설립을 앞장 서서 추진하며 벤처업계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네이버와 엔씨소프트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 교수를 비롯한 벤처 1세대가 만들어온 생태계 안에서 성장했다.

창업 경험을 토대로 이 교수는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전파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자 규제개혁에 대한 이론 체계를 정립했고, 그에 따라 벤처기업들이 집중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강의나 세미나 등을 통해 활발히 제안했다. 오는 28일 열릴 한 경제 포럼에서도 이 교수는 ‘왜 규제개혁인가’를 주제로 규제에 대한 깊이 있는 관점을 풀어놓을 예정이었다.

이 교수는 최근 한일 경제 갈등에 대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우리 산업은 일본에서 소재를 수입해 중국에 부품이나 반제품을 공급하는 구조로 발전해왔다”며 “(이런 구조에선) 회초리를 흔들면 끝부분이 더 크게 흔들리는 ‘회초리 효과’로 인해 가치사슬의 후단이 더 큰 타격을 입는다”고 지적했다. 또 “반일 감정을 앞세워 국가 이익보다 당파 이익을 우선하는 국내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며 이 교수는 정∙재계 모두에게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주문했다.

고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 지난 2017년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북 ‘이민화의 벤처에세이’
고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 지난 2017년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북 ‘이민화의 벤처에세이’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 덕분에 학계와 업계에는 이 교수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성 교수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규제개혁과 기업가정신 확산으로 한국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일관된 소신을 펴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소통 창구로 활용해온 페이스북 ‘이민화의 벤처에세이’에는 “벤처기업 발전에 평생을 바친 큰 별이 졌다” “얼마 전에도 강연을 들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고인의 혜안이 꼭 필요한 시기인데 황망하다”며 그의 명복을 비는 댓글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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