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맞아 딸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에 온 이모(65)씨는 며칠 전 현지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딸이 급하게 이씨를 옮긴 현지 민간 병원에선 치료비와 입원비로 하루 2,500만루피아(약 210만원)를 요구했다. 여행자보험을 가입하고 왔지만 현지 의료 실력을 믿을 수 없었던 데다, 장기 입원이 예상돼 결국 딸은 한국에서 사설 응급의료팀을 불렀다.
20대 주부 김모씨는 지난달 24일 발리에서 서핑을 하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민간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비용은 100만원, 여기에 수술비로 1,000만원을 요구했다. 김씨는 응급 처치 뒤 140만원을 병원에 내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6월 15일엔 초등학생 아들과 발리 여행을 온 30대 박모씨가 서핑을 하다 손가락이 골절됐다. 박씨 역시 비싼 병원비에 질려 응급 치료만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
발리가 급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돌연 몸이 아픈 관광객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지난 한 해 15만명이 찾아올 정도로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여름 휴양지이지만 고가의 병원비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비슷한 사례가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 잇따라 접수되고 있는 만큼 관광객의 주의가 요망된다.
발리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인 관계자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네시아도 외국인에겐 병원비를 비싸게 받고 있다”라면서 “반면 병원 시설이나 의료 인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니 급하지 않으면 현지에선 여행자보험을 활용해 응급 치료만 받고 귀국해서 제대로 치료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최근 들어 인터넷으로 호텔과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관광객 중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에 비용을 아끼려고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응급 치료라도 받을 일이 생기면 큰일”이라고 덧붙였다. 배(여행비용)보다 배꼽(병원비)이 더 클 수 있어, 소탐대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안전 의식도 도마에 오른다. 대사관 관계자는 “최근 접수된 사건 대부분은 수상 레포츠를 자제해 달라는 외교부의 공지가 있었음에도 서핑 등을 하다 벌어졌다”라며 “공지에 ‘4~6m의 높은 파도(매우 위험)’라고 특별히 강조까지 했는데 물놀이를 하다 다친 사건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대사관은 인도네시아 기상청이 높은 파도 주의보 등을 발표하면 이를 다시 우리나라 외교부를 통해 현지에 오는 관광객들에 문자메시지로 알리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민간 병원보다는 발리 주립병원이나 경찰병원으로 가는 게 그나마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행 전 여행자보험에 반드시 가입하고, 정부의 안전 공지에 잘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