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계성수기(7.19~8.18)동안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행객 수는 전년 대비 5.3% 증가한 약 650만명이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쓴 카드이용액은 지속적으로 불어나 작년에는 약 192억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전 국민의 절반 이상 되는 수의 여행객들이 정부 예산의 20분의 1에 육박하는 돈을 해외에서 쓴 셈이다.
즐거움과 휴식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익숙한데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포기와 좌절의 일자리 찾기, 기록을 경신하듯 높아지는 실업률,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여기에 대외적 여건은 점차 어려워지고 해법은 오리무중이다. 정말 경제성장률이 1%대가 된다면 이태백을 넘어 삼태백, 사태백 시대를 우려해야 하는 현실에 일자리라도 해외로 진출해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데 마치 남일인 양 ‘너나 가라’는 이중적 잣대를 보여준다.
‘너나 가라 신드롬’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현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연초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마라”는 발언은 들불처럼 타올라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다음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이 설화(舌禍)는 4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해외진출을 독려하며 “중동으로 가라”고 한 발언을 소환했다. 그때도 역시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격렬히 반발했다.
해외여행객은 매년 늘어가지만 정작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자는 목소리는 외면당하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너나 가라’는 냉소적인 반응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장된 ‘해외진출론’들이 과연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안일하기만 한 인식인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정확히 인식하고 당면한 과제를 냉정하게 분석한다면 중동으로, 아세안으로 떠나야 한다는 주장은 간단히 비난받을 담론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수출 비중과 우리의 오늘이 해외 진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잠시 잊는다 해도 상품과 재화를 넘어 노동의 국가 간 이동이 거의 무제한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만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라 밖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달러를 벌어들이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한 경제구조를 고려하면 시베리아의 동토이든, 사하라의 사막이든 가리지 않고 진출하겠단 역발상이 필요하다. 지구 전체를 시장으로 보는 것이 세계화 전략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얘기했을 때 사회가 보인 반응은 걱정스럽다.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합당한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매우 중요하지만 늘 옳을 수는 없다.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했을 때 많은 비판 여론이 제기되었지만 15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는 거대한 미국 시장을 누비며 국부를 창출하고 있다.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쇄국할 것이 아니라면 다음 세대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라도 눈을 밖으로 돌리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비록 두렵고 고통스럽겠지만 능력과 도전정신을 겸비한 젊은이들이 밖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실패했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자리의 세계화란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성숙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로 뻗어나간 이들이 국력이 되었다. 우리도 그 길을 가자. 그 길이 세계로 가는 길이다. “너나 가라”는 말은 눈앞의 작은 것만을 본 처사이다. 더 큰 미래를 봤을 때 융성했고 안에 머물렀을 때 힘들었다. 가즈아 세계로. 국가적으로 ‘해외진출 의무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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