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 달서구본동종합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
“밥 차려줘!”
60대 남자는 복지관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밥상을 차려달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아내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입에서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는 달서구본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20년 넘게 관리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정지윤(28)선임사회복지사는 요구가 과하다 싶어 그냥 돌려보냈다. 배우자와도 상담을 계속 해왔고, 항상 식사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한 다음에 외출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냥 주사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남자를 집에 데려다주기를 서너 번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남자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복지관에 찾아왔다. 술에 취한 상태로 밥을 차려 먹으려다가 쓰러져서 얼굴을 다친 것이었다. ‘밥상을 차려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립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염없이 쏟아 붓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정 사회복지사의 직무는 ‘사례관리’다. 재가서비스에서 진일보한 복지서비스로 복지의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의 사례관리팀은 모두 4명으로 1:1상담을 통해 가장 구체적이고 세심한 복지서비스를 구현한다.
사례관리의 가장 큰 장점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 사회복지사가 지난해 만난 60대 여성 박모씨는 월세도 못 낼 만큼 힘든 상황이었다. 남편은 당뇨로 시력을 거의 잃었고, 수입이 없는 데다 딸은 나가서 살고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박씨는 우울증과 싸우면서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복지관을 통해 밀린 월세를 지원받고 지금까지 1:1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정 사회복지사에게 “창밖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고 고백했다. 정 사회복지사는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회적 약자가 많다”면서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이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돌보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복지대상자들 때문에 절망할 때도 있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많다. 특히 청소년들은 관심을 주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변화해간다. 도움을 받은 후 복지관에서 주말봉사자로 활동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고등학교 시절에 정 복지사를 통해 학습비 지원과 멘토링을 받은 김모군(20)은 현재 대학에서 배운 제빵기술로 코이카를 통해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 사회복지사가 복지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러다 할머니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호스피스에 관심을 가지다가 서서히 사회복지에 눈을 뜨게 됐다.
“오랫동안 꿈꾸면서 준비한 일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들어와 보니 매일 제 자신에게 부족한 점만 보이더라고요. 지금이 꼭 5년차인데 그동안 배우기에 바빴어요. 앞으로는 조금 더 기민하게 복지 대상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실력자가 되고 싶어요.”
정 사회복지사는 지난 6월에 대구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가 주최한 제30회 대구사회복지사워크샵에서 5년차 미만의 사회복지사에게 수여하는 ‘DGB 대구사회복지사상 청년상’을 수상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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