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미제사건 진상규명 시도 막을까 우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3일 방송하려던 ‘고(故) 김성재 사망 사건 미스터리’ 편이 법원의 제동으로 전파를 못 타게 됐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 반정우)는 과거 김성재의 여자친구 김모씨가 명예 등 인격권을 보장해달라며 법원에 낸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2일 받아들였다. 법원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방송을 시청해 신청인의 인격과 명예에 중대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방송 내용의 가치가 신청인의 명예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힙합 듀오 ‘듀스’로 인기를 누리다 솔로로 전향한 김성재는 1995년 11월 20일 한 호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몸에서 주삿바늘 자국 28개가 발견됐다. 사인이 ‘졸레틸’이란 동물마취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억측이 난무했다. 특히 김씨가 고인의 사망에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씨는 1996년 김성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김성재를 살해할 만한 뚜렷한 동기와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언했고, 이는 상고심에서 확정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5개월간의 취재 끝에 고인의 부검 보고서, 사진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종합해 이번 방송을 준비했다고 예고했다. 가처분 신청 심문에서는 “수사기관의 수사방식 개선과 피고인에게 불리한 재심 제도 도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하려는 기획 의도 아래 이 방송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SBS 측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이 방송을 방영하려고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수사기관의 수사방식 개선이란 기획 의도를 내세우고 있지만 김씨 형사 사건 재조명이 방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재심 제도의 도입 역시 제도 자체의 장단점에 관한 소개와 논의가 없는 점으로 미뤄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법원은 “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받는 전체적인 인상은 김씨가 김성재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김씨의 인격과 명예가 훼손되는 등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이 갖는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을 감안하면 사후 정정보도나 반박보도에 의한 피해구제만으로는 충분한 인격과 명예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SBS는 3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결방하고 수목드라마 '닥터탐정'을 재방송하기로 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법원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으나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방송금지 결정이 수많은 미제 사건들, 특히 유력 용의자가 무죄로 풀려난 사건에 대해선 진상규명 노력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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