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전 국민적 ‘일본 불매운동’ 흐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15년 만에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지난 달 초 반도체 핵심소재 등 수출 규제 강화 통해 1차 보복에 나섰던 일본이 한 달 만에 2차 보복에 나서며 국내에 만연한 반일 감정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유례없는 반일 감정 속 연예계 역시 ‘몸 사리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일본 불매운동 흐름이 연예계에 미친 파장이 다소 부분적이었다면, 이날 이후로는 그 파장이 더욱 몸집을 불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다들 서두르는 모양새다.
가요계는 이미 지난 달 반일 감정이 고조되며 홍역을 치른 바 있었다. 일본의 1차 경제보복 조치 이후 반일 감정이 확산되며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가운데 일본인 멤버인 트와이스 사나, 모모와 아이즈원 미야와키 사쿠라, 혼다 히토미, 야부키 나코 등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제기된 것이었다. 이 같은 여론은 당시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등장하며 확산됐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은 삼가야 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사그라들었다.
일본인 멤버의 퇴출이라는 극단적 주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이들의 활동이 상당히 조심스러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 가요계 관계자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인 만큼 전체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주시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본인 멤버들의 국내 활동에 제약이 걸린 것도 문제지만,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일본에서도 활동 중인 만큼 일본에서 거둔 차트 성적 등의 성과를 국내 프로모션에 활용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리스크인 상황”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K팝 아이돌들의 향후 일본 공연에 대한 우려 섞인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돌 그룹 해외 공연의 경우 연간 단위로 플랜이 짜여있기 때문에 공연에 임박한 시기 이를 취소하게 될 경우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는 회사 입장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라고 토로했다.
배우들의 경우 일본 불매운동 및 반일 감정 촉발의 여파로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들이 외면당하며 타격을 입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드라마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을 리메이크 한 채널A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이 현재 1%의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간 종종 일본을 찾아 팬미팅을 진행해 왔던 한류 스타들 역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배우 장기용은 2일 일본 도쿄에서 예정된 첫 팬미팅 ‘2019 장기용 일본 팬미팅 퍼스트 콘택트(2019 JANG KI YOUNG JAPAN FANMEETING First Contact)’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장기용은 이날 따로 출국 일정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출국 모습이 일부 매체에 포착되며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장기용의 경우, 이미 3개월 전인 지난 5월 일본 팬미팅 개최 확정 소식을 전했던 바. 위약금 등 외부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행사 취소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장기용의 경우야 차치하더라도, 출국 소식만으로도 뜨거운 비난 여론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당분간 다른 배우들의 일본 팬미팅 개최 소식은 접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예능 등 방송의 경우 여행 예능들이 ‘일본 지우기’에 발 벗고 나선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대표적인 여행 예능인 tvN ‘짠내투어’, KBS2 ‘배틀트립’은 그간 국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을 가진 여행지인 일본을 자주 소개해 왔지만, 일본 불매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일본 관련 콘텐츠를 배제하고 있다. 방송계의 이 같은 ‘몸 사리기’ 바람은 앞서 SBS '집사부일체'가 일본 아오모리현을 소개하는 내용을 방송했다가 대중의 뭇매를 맞았던 것이 강력한 선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며 국내의 반일 감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연예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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