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불문 한국 치기로 작정한 일본
우익 정치세력의 패권 발호 아닌가
관망하는 중ㆍ미 뒤통수 맞을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 목록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의결을 강행했다. 연합뉴스

솔직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사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물론 일본은 부인하지만)로 광범위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아베가 궁극적인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단순히 일본 기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으로는 보복 수준이나 강도, 규모가 지나치다. 그동안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해 왔던 한국을 손보기로 작정하던 차에 안성맞춤의 빌미를 잡았다는 것인지 그 태도가 사무라이 분위기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2일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결정을 한 행위와 그 일련의 과정은 명백히 패권적이다. 무역 관련 국제협약 규정이 각 나라 이해에 따라 갖다 붙이기 나름일 정도로 분명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국가 안보’를 운운하는 일본 측 명분은 여러 정황에 비춰 핑계에 불과하다. 정치 보복이 무역 장벽을 쌓는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보인 일본 당국의 무례와 완고한 태도는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로, 우리 외교사에 남을 치욕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상대국 특명전권대사에게 행한 고노 외무장관의 언행은 적대국이 아니라면 국제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일련의 무례 행각은 이유 불문하고 한국을 치겠다는 일본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이 정권의 무능함 무감각과 별개로 아베 정권의 사전 준비와 행동 계획, 단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무엇보다 일본은 1,000억원에 불과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로 우리 수출의 25% 이상을 점하는 반도체 등 첨단부품 산업의 앞날이 불안정해지는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맞대응에 나섰지만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나라경제가 얼마나 흔들릴지 당장 가늠하기 어렵다. 아베 정권은 우리를 치기 전 두루 고민한 흔적이 농후하다. 이 조치가 G20정상회의 직후 전격적으로 이뤄졌으니 준비 없이 당하는 우리 정부 혼란도 머릿속에 넣어두었을 터다. 이것만일까. 큰 형님인 미국과는 더 없이 가까운 사이가 돼 트럼프는 아베를 특별한 친구라 불렀다. 언제 견원지간이었느냐는 듯 시진핑 중국 주석을 앞에 두곤 영원한 이웃나라라고 치켜세우고 신시대 중일 관계를 구축하자는 하모니를 낼 정도로 주변 강대국 사전 정지작업까지 탄탄하게 해놓은 터다. 큰 전쟁을 치러 본 일본답다.

미국 정부의 선택지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옵션’이 없다고 한다. 적대 행위를 한다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특정 국가를 상대로 기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무력 사용 원칙이다. 미국인의 치를 떨게 했던 일본 전시내각의 진주만 습격을 비꼬는 용어다. 사전 계획과 정지작업,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선전 구호까지 치밀함 뒤에 어른거리는 일본 우익 정치집단의 교활함을 본다. 더구나 일본 국민은 홀린 듯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터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아베 정권의 문제 이상으로 개인주의화해 있는 일본인이 집단화하는 게 더 우려되는 일”이라고 했다.

심각한 사태 전개에 놀란 미국이 개입하는 모양새지만 말이 먹히지 않는 걸 보면 일본 우익 정치집단의 폭주는 통제불능 상태가 되고 있다. 2차대전 패전 이후 본 적이 없는 일본의 선제 경제보복은 동북아 정세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느낌이다. 최소 100년 이상 숨 죽이며 지내야 마땅할 전범 국가 일본의 우익 정치집단이 발호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다. 지난해 말 우리 구축함의 레이더 조준을 시비한 일본 초계기 도발 소동도 우연한 사건이 아닌 듯하다.

누구를 탓하랴. 2차대전 종전 직후 동서 냉전에서 대소련 전초기지로, 오늘날엔 중국 굴기에 맞설 견제세력으로 일본 우익 정치세력을 가꾸고 키운 게 미국이다. 관세 압박에 시달리는 중국도 일본과 원만한 관계 유지를 바라면서 국제분업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본 공세를 관망하는 형국이다. 일본 우익 정치세력이 지금 동북아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고 있지만, 오랜 역사와 그 본질에 비춰 두 거인의 뒤통수를 넘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너무 멀리 보는 것인가.

정진황 뉴스1부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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