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광보씨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일 제주 제주시 도련일동에 위치한 ‘수상한 집’에 만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광보씨가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김영헌 기자.

“30년 넘는 세월을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다.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족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이미 다 잃었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1일 제주 제주시 도련일동에 위치한 ‘수상한 집’에서 만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광보(79)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지난 6월 22일 문을 연 ‘수상한 집’은 강씨처럼 국가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기억공간이자, 쉼터다. 이곳은 강씨의 노부모가 “옥살이를 하고 나온 아들이 누울 곳은 있어야 한다”며 마련해 놓은 자그마한 집 위에 새로운 집을 하나 더 지은 ‘집이 집을 품은’ 독특한 구조다. 강씨의 보상금과 그의 재심을 도왔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지금 여기에’가 주도해 모은 후원금 등으로 지어졌다. 강씨가 살던 ‘광보네 집’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전시실이 됐고, 1층에는 카페,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강씨도 1층에 마련된 방에서 살면서 ‘수상한 집’을 지키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제주 제주시 도련일동에 위치한 ‘수상한 집’. 국가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기억공간이자, 쉼터다. 김영헌 기자.

강씨가 간첩으로 몰려 기구한 삶을 살게 된 사연은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씨는 1962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 당시 많은 제주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강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 시절 일본에는 4ㆍ3사건을 피해 건너간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밀항자들은 친ㆍ인척의 도움을 받아 공장 등에서 일을 하고 모은 돈을 고향으로 부쳤다. 강씨도 백부가 있는 오사카로 건너가 공장 등에서 일했고, 같은 고향 출신인 아내까지 만나 2남 1녀의 자식들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79년 5월 불법체류자로 적발됐고, 같은해 7월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강씨는 “당시 일본 정부는 10년 넘게 체류한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강제추방하지 않고 일본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했다”며 “하지만 처음부터 일본에 정착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 계속 일본에 있었다면 이런 삶은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중앙정보부 건물로 끌려가 다짜고짜 매타작을 당했고, 자술서를 쓰고 3일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한달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제주경찰서에 끌려가 2개월 넘게 간첩임을 인정하라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일본에 있던 친척들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소속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10ㆍ26사태’가 발생하자 조사가 흐지부지되다 풀려났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7년 뒤 1986년 다시 보안사로 끌려갔고, 또다시 모진 고문이 시작됐다. 결국 강씨는 1986년 8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으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고, 광주와 전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1991년 5월 25일 풀려났다. 출소 후 제주로 돌아와 막노동과 야간경비원으로 힘겹게 살다 2009년 자신과 같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제주 출신 강희철씨가 재심 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됐고, 재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 여기에’와 연결됐고, 결국 2017년 7월 17일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일 제주 제주시 도련일동에 위치한 ‘수상한 집’에 만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광보씨. 김영헌 기자.

강씨는 “간첩으로 몰린 후 옥살이 등으로 가정이 파탄이 났고, 친구들과 동네사람들도 뒤에서 수군거리며 의심을 하고 피하기 일쑤였다.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해는 됐지만 마음 고생이 말도 못했다”며 “지금은 고향 친구들이 먼저 연락도 오고, 다시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상한 집’은 나와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사람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 만든 곳”이라며 “다시는 나와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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