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10년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2015년 말부터 이어진 ‘돈줄 조이기(통화 긴축)’ 정책 기조도 공식 종료한 셈이다. 하지만 연준은 향후 금리의 방향에 대해 모호한 설명만 내놨다. 화끈한 연준의 돈 풀기를 기대했던 금융시장의 실망감이 역력한 가운데, 연준의 모호한 태도가 가뜩이나 부진한 세계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킬 거란 우려도 나온다.
◇’공격적 금리인하’ 기대 지운 연준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31일(현지시간) 이틀 간의 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종전 연 2.25~2.50%에서 연 2.00~2.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는 2008년 12월 이래 연준의 첫 금리인하 조치다. 연준은 FOMC 의결문을 통해 “글로벌 경기전망 악화와 미국 물가 부진”을 인하 이유로 제시했다. 또 “연준 보유 채권을 매각해 시중자금을 회수하던 ‘자산 축소’ 정책을 예정보다 두 달 앞당겨 8월부터 종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의 금리 방향에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장기적 금리 인하의 시작이 아닌 중간(mid-cycle) 조정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간 조정’이 뜻하는 바에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미국 경제 전망은 양호하며 과열 또는 침체를 보이는 부문도 없다. (금리 인하는)경기하강 위험에 대비한 보험적 성격의 조치”라고 했다. 또 “(그렇다고)금리 인하가 한 번뿐이라는 말은 아니다”라며 추가 인하 여지도 열어뒀다.
시장에선 여전히 호황인 미국 경제와 하강 조짐이 뚜렷한 글로벌 경제 사이에서 연준이 절충적 입장을 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비드 베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경제가 계속 부진할 경우 미국 수출시장이 위축될 악영향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며 “미ㆍ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따른 투자 저하도 이번 금리인하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은 실망감 역력
연준의 이번 결정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실망감이 역력하다. 공격적인 금리인하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당장 그간 기대감에 부풀었던 자산가격이 재조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1일 미국 증시는 파월 의장 기자회견 직후 가파르게 떨어져 1% 이상 하락 마감하고 미국 국채 3년물 금리(연 1.83%)는 0.6% 반등하는 ‘가격 되돌림’ 현상이 일어났다. 미 달러화 역시 강세를 보여 이날 미 달러 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0.55% 급등했다.
시장에선 연준이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의결문에 비해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었다”며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이 다소 혼란스러웠다”고 지적했다. FOMC 투표권자 10명 중 2명이 미국 경기 지표가 견실하다며 금리 인하 결정에 반대한 점도 시장 혼선을 키운다. UBS는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연준 내부의 컨센서스(합의) 형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금리 몇 번 더 내릴까
다만 시장은 여전히 연내 한두 차례 추가 인하를 점치는 분위기다. 국제금융센터가 1일 취합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11곳의 연준 기준금리 전망치에 따르면 8곳이 연내 한 차례, 2곳이 두 차례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인하 시기는 9월(씨티, 소시에테제네랄)과 10월(노무라) 등으로 갈린다.
기축통화인 달러화 발행기관인 연준이 금리를 낮추면서 다른 국가들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설 여지가 넓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 역시 연내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부담을 한층 덜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이 연내 금리를 재차 내릴 방침을 비치면서, 한은이 단독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데 따른 내외금리차 확대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이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덜 완화적”이라면서도 “(한은도) 경제 상황이 많이 악화되면 당연히 (추가 금리 인하를)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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