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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아는 엄마 기자] 수학계 주류 ‘기하와 조합’ 학교에선 배울 수가 없네

입력
2019.08.03 13: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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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사설 학원들이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가 급격하게 늘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집이라는 걸 어찌 알았는지 현관문에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학원과 과외 광고지가 붙는다. 내용은 한결 같다. 여름방학을 허투루 보내면 아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겁주기 문구로 시작해서, 우리 아이도 남들처럼 특목고 진학을 꿈꿔볼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마무리된다. 번듯하게 대학 나와도 직장 얻기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부모들은 이런 유혹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주말에 한 유명 학원이 마침 입시 설명회를 한다 길래, 한번 들어나 볼까 싶어 안내 문자 메시지에 참석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여기서 ‘입시’는 대학이 아니라 고교 입학 시험을 뜻한다. 자녀를 영재학교나 과학고, 자율형 사립고, 국제고, 외국어고 등에 보내는 걸 목표로 삼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원은 다양한 정보를 풀어 놓았다.

학원은 특목고를 나름의 뚜렷한 ‘기준’으로 분류했다. 수학과 과학 모두 뛰어나면 가는 곳이 영재학교, 과학에 비해 수학이 좀 약하면 과학고, 의대 진학이 최종 목표인 학생이 선택하는 곳이 자사고, 이공계 아닌데 공부 잘 하면 택하는 곳이 국제고나 외고다. 수학이 뛰어난 아이라면 일단 영재학교부터 시험 보고, 떨어지면 과학고와 자사고에 차례로 지원하라는 ‘특목고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특목고 합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목으로 학원은 수학을 꼽았다.

로드맵에 맞춘 학원의 수학 학습 연간 계획표는 화려했다. 계획표 대로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중학교 교과과정 학습을 모두 끝내고 고등학교 과정도 일부 공부하게 된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엔 교과서 수준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며, 한편으론 본격 특목고 입시 전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대회 입상을 준비한다는 전략이다. 수학올림피아드 문제가 특목고 입학시험과 유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함께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학원은 덧붙였다.

그리고 나선 참석한 학부모들이 솔깃할 만한 수학 학습 ‘팁’을 내놓았다. 특목고에 합격하기 위해선 특히 기하와 조합을 깊이 있게 공부하라는 것이다. 기하학은 평면과 입체 도형의 다양한 특성을, 조합론은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는 가짓수나 주어진 성질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다룬다. 정수론, 대수학과 함께 수학의 주요 분야다. 다른 분야와 달리 기하와 조합은 고교 교육과정에 나오는 공식이나 개념 등을 ‘선행학습’ 하지 않아도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면 처음 본 문제나 고교 수준의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다고 학원은 설명했다.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하면서 영재성을 보이는 학생을 판별하는 문제를 출제하는 데 기하와 조합이 적합한 분야라는 얘기다.

실제로 기하와 조합의 중요성은 최근 국내외 수학계에서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물론 배경은 학원이 내세운 이유와는 전혀 다르다. 수학이 응용되는 산업 분야가 확대되면서 복잡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단순화시켜 설명하는 기하와 조합이 산업 현장에 기여하는 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형의 성질을 논리적인 사고 전개로 추론해내는 기하 논증, 복잡한 관계에서 핵심을 뽑아내 구조적으로 표현하는 그래프이론(조합 분야의 한 이론) 등이 지금까지 설명되지 못했던 산업계의 각종 난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떠올랐다.

수학계의 이런 경향은 국제 대회로도 점차 옮겨오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대표로 출전한 학생들이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도 기하와 조합 관련 문제 비중이 높았다.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올해로 4번째 IMO에 참가한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는 “이번 대회에선 기하와 조합의 중요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지 않지만 수학적 논리 전개로 풀이가 가능한 수준의 평면기하와 그래프이론 문제가 출제됐다”고 전했다.

그런데 국내 수학 공교육은 이런 흐름과 반대다. 수학자들은 중고교 수학 교육과정에서 기하와 조합은 점점 내용도 중요도도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반고는 물론 상당수 특목고에서도 산업계 응용을 확대하는 수학계의 큰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당장 눈 앞의 입시 공부 위주로 수학을 가르친다”는 우려가 높다. 수학계와 공교육 사이의 이런 괴리를 사교육이 파고들고 있다. 학교와 학원이 가르치는 수학이 더 달라지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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