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펼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비극의 상징이 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철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분홍색 시소가 설치되면서 국경 일대가 양국 주민들의 놀이터로 변모한 것이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뉴멕시코 선랜드파크에 분홍색 시소 세 개가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시소를 설치한 이는 로널드 라엘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와 버지니아 산 프라텔로 새너제이 주립대학 부교수. 이들은 지난 2009년 ‘인간이 만든 장벽의 쓸모 없음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이 시소를 구상하고 10년 만에 현실화했다. 라엘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소 동영상을 올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한쪽에서 일어나는 행동이 다른 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과 함께 연결됐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시소를 통해 우리는 모두 똑같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에 시소가 설치된 선랜드파크는 특히 이민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하게 불거졌던 곳이다. 지난 4월 우익 민병대 소속 조직원이 중남미 출신 이민자를 구금했다가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으며, 5월에는 자발적으로 국경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온 민간단체가 1마일(1.6㎞)짜리 울타리를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사진과 동영상 속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소를 탔고, 어른들은 웃고 잡담을 나누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미국-멕시코 국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과 그로 인한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에 ‘관세 협박’을 가해 최근 이민자를 겨냥한 경비를 강화하는 등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민자들의 미국 입국 시도는 줄지 않으면서다. 특히 지난 6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에서 엘살바도르 출신 남성과 그의 23개월된 딸이 급류에 휩쓸려 숨지기도 했다.
이 같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장벽 건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 대법원이 하급심을 뒤집고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국방예산 전용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