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윤아 말고 본래 임윤아로, 연기도 잘하는 아이돌이 아니라 연기가 본업인 배우로, 지금 ‘배우 임윤아’(29)는 중요한 관문 하나를 통과하고 있다. 스크린 첫 주연, 제작비 100억원대 프로젝트, 흥행 압박. 그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책무다. 다행히 시작이 좋다. 영화 ‘엑시트’는 31일 박스오피스 진입 직후 ‘여름 극장가 복병’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임윤아는 “다른 배역과 잘 어우러져서 보기 좋았다는 얘기를 가장 듣고 싶었다”며 생긋 웃었다. 소녀시대 데뷔 이전 MBC 드라마 ‘9회말 2아웃’(2007)으로 연기를 먼저 시작했고 KBS ‘총리와 나’(2013), tvN ‘The K2’(2016), MBC ‘왕은 사랑한다’(2017) 등 출연작도 꽤 쌓였지만, 영화는 ‘공조’(2017) 이후 두 번째다.
‘엑시트’에서 임윤아는 퍽퍽한 현실을 성실히 살아가는 연회장 직원 의주를 연기한다. 의주가 행사 진행을 맡은 연회장에서 대학 산악부 선배 용남(조정석)의 어머니 칠순 잔치가 열린 날, 도심 한복판에 유독가스 테러가 발생한다. 의주는 앞장서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용남과 함께 산악부에서 익힌 암벽 등반 기술과 주변 사물을 활용해 탈출을 감행한다. 임윤아는 “긴장감과 유쾌함, 현실감이 모두 갖춰진 시나리오였다”며 “의주가 책임감 강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라는 점도 끌렸다”고 말했다.
의주와 용남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건물 벽을 기어오르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초인도, 영웅도 아니다. 사람들을 먼저 구조 헬기에 실려 보내고선 뒤돌아 울먹이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에 짠내가 물씬하다. “연기할 땐 코믹하다고 생각 못했는데 많이들 웃으시더라고요. 아무리 책임감이 강해도 살고 싶은 본능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니까 공감을 산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감정으로 연기했고요. 의주가 엉엉 우는 모습뿐 아니라 모든 장면을 화면 일시 정지 상태로 본다면 굉장히 못난 얼굴일 걸요(웃음).”
임윤아는 촬영 3개월 전부터 암벽 등반과 와이어 액션을 훈련했다. 날렵한 몸놀림과 강철 체력으로 대부분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임윤아는 “무술팀이 ‘이렇게까지 와이어 장치를 오래, 많이 타는 여배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며 수줍게 자랑을 보탰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인생 경험”으로 여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죠. 가수와 배우를 병행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예요.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이 없는 것 같아요.”
가수 연습생으로 보낸 10대와 소녀시대로 무대를 누빈 20대를 지나 이제 배우로 서른 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윤아는 어느 순간 여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예전엔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괴롭혔죠. ‘공조’ 촬영하던 2년여 전부터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항상 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더 중요해졌고요. 출연작을 고를 때도 성과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어요.”
임윤아는 “모든 일엔 다 뜻이 있다”는 좌우명을 들려줬다. 어느 때보다 눈빛이 단단했다. “그동안 캐릭터나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매 순간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연기를 해 왔어요. 앞으로 제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죠(웃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가 쌓여서 저를 완성하지 않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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