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이드라인에 노동계 “장시간 노동 유지 꼼수” 우려
소프트웨어(SW)나 게임개발, 무대디자인 종사자들도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하는‘재량근로제’ 의 대상이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31일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활용 욕구가 높아진 재량근로제의 기준과 대상을 지정하는 ‘재량근로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해 소재 등의 시급한 국산화가 필요해 정보기술(IT) 업계의 연구개발(R&D) 분야 등에서 이 제도의 활용을 요구해왔다. 재량근로제는 주 52시간 한도에 구애 받지 않고, 노사 간 서면합의로 규정된 근로시간만 일한 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예를 들면 A연구소 소속 연구자가 하루 9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연구소와 서면합의를 하면, 특정일에 이보다 더 적은 8시간, 혹은 더 많은 11시간 동안 연구했더라도 해당일 근로시간은 9시간으로만 인정한다. 서면으로는 주 52시간으로 근무한 것으로 표시가 되지만, 실제로는 52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근무하더라도 위법이 아니다. 재량근로제는 연구처럼 높은 창의성과 전문성이 필요하고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업무 수행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업무에만 적용된다. 지금까지는 연구업무, 신문기사 취재업무 등 12개에만 허용됐으나 고용부가 이날 금융투자분석과 투자자산운용을 대상업무에 추가하면서 모두 14개 업무에서 허용된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신상품과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서는 실물제품뿐만 아니라 SW, 게임, 금융상품 등 무형의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사람도 재량근로제를 활용할 수 있다. 실내장식ㆍ광고 등의 디자인ㆍ고안 업무에는 무대ㆍ세트ㆍ디스플레이 디자이너도 포함된다. 재량근로제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에서 적용되는데, 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가이드라인에서는 사용자가 업무의 목표나 기한, 근무 장소에 대한 지시, 일정 단계에서의 진행상황 과 정보공유 등을 위한 업무보고 등은 받을 수 있도록 명시했다.
특정 업종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허용에 이어 정부가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해주는 재량근로제의 대상까지 넓혀주면서 노동계는 강하게 우려를 표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이번 가이드라인이나 대상업무에 금융투자분석업무 등을 추가한 정책들은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노동부가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는 꼼수를 알려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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