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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미국산 무기 M4 카빈은 어떻게 온두라스 소녀를 표적으로 두게 됐나

입력
2019.08.01 16:00
수정
2019.08.01 19:0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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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2월 1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시내에서 미 육군의 M4 카빈을 손에 든 온두라스 헌병대가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쫓아가고 있다. 마이애미헤럴드 트위터 캡처
지난 2017년 12월 1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시내에서 미 육군의 M4 카빈을 손에 든 온두라스 헌병대가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쫓아가고 있다. 마이애미헤럴드 트위터 캡처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도심에 모여있던 젊은이 수십 명 앞으로 무장 헌병대(Military Police)를 실은 트럭이 들이닥쳤다. 트럭에서 뛰어내린 헌병대원들은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젊은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2017년 12월 1일. 갑작스럽게 날아온 총알을 머리에 맞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녀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날을 전후로 며칠 사이 헌병대가 쏜 총알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30명 이상. 부상자는 수백 명에 달했다. 사상자들은 한 달 전 치러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며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의 재선을 규탄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온두라스 헌병대는 정부군이나 경찰과 별도로 2013년 결성된 준군사 조직.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불법적인 살인을 저질러 악명을 떨치는 집단이다. 문제는 미국 마이애미헤럴드가 입수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헌병대 손에 들려있던 총기가 다름아닌 미 육군 제식소총 ‘M4 카빈’이었다는 점이다. 미군이 설계 소유권을 갖고 있고, 미 정부가 직접 수출 관리까지 하는 총기가 중미 작은 국가로 흘러 들어가 인권탄압에 사용된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온두라스 헌병대와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에릭 올슨 중남미 담당 부국장은 마이애미헤럴드에 “(온두라스 헌병대에 대한) 미국의 공식 정책은 매우 명확하다. ’우리는 헌병대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미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인권유린과 강력범죄 상당수에 미국산 총기가 이용되면서, 총기를 판매하는 미국도 이 문제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남쪽으로 향하는 미국산 총기… 증가하는 살인사건

지난 2017년 7월 온두라스 정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헌병대의 모습. 미 육군의 M4 카빈을 들고 있다. 온라인 캡처
지난 2017년 7월 온두라스 정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헌병대의 모습. 미 육군의 M4 카빈을 들고 있다. 온라인 캡처

미국은 범죄와 부패로 신음하는 중미 3국(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과 멕시코에 총기와 탄약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국가다. 국제무역 통계인 ‘유엔 컴트레이드’에 따르면 미국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약 4,000만~5,000만달러어치의 총기를 멕시코에 수출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과테말라 역시 2017년 총기 370만~550만달러어치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했으며,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중남미에 수출된 미국산 총기가 인권탄압을 일삼는 정권의 수중에, 혹은 부패한 군 관료를 거쳐 범죄조직의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미국의 중미 무기 수출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거래하는 수십억달러 무기 거래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라면서도 “인구가 적고 정부가 부패한, 가난한 나라에 이 같은 무기 판매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브루클린대 정치학자 마크 운가르는 “아래쪽(중미)에는 암시장에 무기를 내다 팔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국가범죄와 조직범죄에 차이가 없다”고 평했다.

미 정부가 판매 승인을 내지 않았지만 밀수출된 총기까지 포함하면, 미국산 총기를 언급하지 않고는 중미 내 강력범죄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2016년 범죄에 사용돼 멕시코 당국이 압수한 총기의 70%가 미국산이었다. 비영리조직 미국진보센터는 최근 보고서 ‘우리의 국경을 넘어서’에서 2014년~2016년 엘살바도르에서 압수된 총기의 49%, 온두라스에서 압수된 총기의 45%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추산했다.

지난 201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무기 제조업체 전시관에 총기가 진열돼 있다. 시카고=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무기 제조업체 전시관에 총기가 진열돼 있다. 시카고=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 미국산 총기가 중미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는 사이 총기를 이용한 강력범죄는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멕시코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상승한 8,493건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기간에는 살인사건 3만3,500건이 발생해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미 3국 역시 2017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발생 건수가 20~60건에 달할 정도로 치안 붕괴 상태에 놓여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4년 텍사스주 등에서 총기 판매가 다시 허용되자 국경을 맞댄 멕시코 지역의 살인율이 높아졌다면서 “미국산 총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실제 살인율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지켜지지 않는 총기 수출 규정… 트럼프 “수출 더 쉽게”

물론 미국 정부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든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총기 수출을 허가해주는 것은 아니다. 현 규정에 따르면 무기를 해외에 판매하고자 하는 업체는 수출허가를 신청하면서 구매자 정보를 정부에 알려야 한다. 무기 구매자가 블랙리스트에 등재돼있지 않은지, 밀수를 할 가능성이 없는지 정부가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 100만달러 이상의 총기를 수출할 경우 국무부는 이 사실을 의회에 통보해야 하며, 의회는 해당 거래를 지연하거나 취소할 권한을 갖는다. 무기 수령자가 수출허가 신청서에 기재된 구매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진행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은 잘못된 총기 수출을 막는 데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대(對)중남미 무기 수출을 연구해온 존 린제이-폴란드는 FP에 “(정부의) 시행지침은 어떤 인권유린 행위가 수출 금지 사유인지, 수출품이 잔혹 행위에 이용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미국ㆍ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중남미 출신 모녀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티후아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ㆍ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중남미 출신 모녀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티후아나=로이터 연합뉴스

모호하게나마 있는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최근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무부 직원들이 심사를 진행한 무기 수출 신청 21건 중 20건의 신청서에 주요 정보가 누락돼 있었다. 그런데도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승인이 내려졌다. 국무부는 이중 100만달러 이상 규모인 17건에 대해 의회에 보고를 해야 했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또 무기 수출품 중 최종 사용자가 신청서에 기재된 무기 구매자와 동일한지 추가검사를 받는 비율은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 수출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려는 심산이다.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는 기관총을 제외한 반자동소총 등 소형화기의 수출 관리를 국무부가 아닌 상무부에 맡기려 했다. 또 대규모 수출에 대한 의회 통보 의무를 없애는 등 더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도록 했다. 미 하원이 지난 11일 총기 수출품을 국무부 군수품목록에서 빼가는 것을 막는 내용의 국방수권법(NDAA) 수정안을 승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지만, 규제 완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한편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경장벽 설치 △중미 이민자 망명신청 제한 등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펼치면서도 오히려 중미 지역의 안보를 위협, 이민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FP는 “중미 국가의 폭력과 부패, 인권유린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가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총기 판매가 폭력과 부패를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무기 수출을 통해 스스로의 목적(이민자 억제) 달성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평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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