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어느 나라도,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정세를 원치 않는다. 그런데도 온다. 기원전 202년 경 중국 해하(垓下)에서 벌어진 초(楚)와 한(漢)의 결전에서, 완전히 포위당한 초의 군대는 한의 병사들이 부르는 슬픈 가락의 초의 노래를 사면에서 들어야 했다. 살육의 현장에서 울리는 고향 노래는 초의 군대에 비수를 꽂는 것보다 강한 일격이었다. 고우영의 ‘초한지’에서 사면초가는 말미잘이 오물오물 초군을 삼키는 장면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가리키는 고사 사면초가가 한반도 평화과정을 배회하고 있다.
2019년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들에 대한 수출규제를 실행에 옮겼다. 6월 30일 한국전쟁 당사자 가운데 중국을 뺀 남북미 정상이 정전협상 장소였던 판문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만난 직후였다. 사실상 한반도 종전선언의 화면을 보며 일본 정부는, 북일 정상회담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판결을 내린 후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보복이었다. 이 시차와 시점은, 일본 정부의 대한 제재가 한반도 평화과정에 대한 맞불임을 보여 주는 지표다.
일본 정부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에도 불구하고,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2018년 12월 발효를 주도했다.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호주 캐나다 멕시코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교역량의 15.2%를 차지하는 자유무역지대의 건설이었다. 그 일본이 한국에만 보호주의의 칼을 뽑았다. 1930년대 대공황의 경험처럼, 경쟁적 보호주의는 서로의 경제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 일본의 대한 제재가 순간의 감정의 소산이 아니라 장기전의 전초라면, 반도체 산업의 지구적 가치 사슬을 생각할 때 일본 자신은 물론 관련국 모두를 사면초가에 직면하게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한반도 평화과정이 배태하고 있는 또 다른 동북아 질서를 잠재적으로 지시했다. 개인의 개인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의 인정은,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과 그 조약의 모법격인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적과 적의 위협을 상정하는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한미 동맹을 보조로,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관철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이 체제 하에서 일본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중일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안보에서는 동맹 질서의 지속과 전범 국가에서 전쟁 국가로 이행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은 북한에도 비슷한 접근을 할 수 있다. 일본은 한반도 평화과정을 동북아 지역에서 특유의 안보ㆍ경제 분리 전략을 위협하는 방해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한반도 평화란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려는 한국의 규범 권력에 일본이 대한 제재를 통해 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일 갈등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다.
일본의 대한 제재 이후 한반도 평화과정은 교란 국면으로 가고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와 남한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 같은 군비 증강에 대해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신형 미사일실험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과 한국군 해외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연합훈련을 하며 한국 영공을 침범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한반도 평화과정을 가능케 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핵ㆍ미사일실험 중단을 교환하는 최소 규범의 지속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 규범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새 동북아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씨앗이다. 한반도 평화과정의 역사적 의미를 재구성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자칫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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