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유통 시장에 중간은 없습니다. ‘초저가’와 ‘프리미엄’ 두 형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은 가치 소비에 중점을 둔 영리한 고객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도태됩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신년사)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정 부회장이 올해 초 선언한 초저가 가격 전략을 반 년 연구 끝에 마침내 선보인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는 최고급 상품으로, 이마트와 온라인 상품몰인 SSG닷컴을 통해서는 가성비 최상의 상품으로 고객과 접점을 찾겠다는 게 정 부회장의 생각. “신세계만의 스마트한 초저가 모델을 선보여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라“는 주문을 마침내 결과물로 내놓은 것이다.
이마트는 생필품 등을 30%에서 최대 60%까지 싸게 파는 초저가 상품 정책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을 1일부터 선보인다고 31일 밝혔다.
이마트 측은 이번 초저가 전략이 기존의 여타 할인 행사와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 번 정해진 가격을 은근슬쩍 다시 원 상태로 돌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원가 분석을 바탕으로 유통 구조 자체를 바꿨기에 적정 수준의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인데, 싸게 팔수록 손해를 보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할인 행사와 작별을 선언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의 공세에 밀려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대형마트가 내놓을 수 있는 나름의 승부수“라며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간 치열한 ‘가격 전쟁’의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지에 업계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행사의 성패를 가늠할 선발투수로는 시세 대비 60% 가량 저렴한 4,900원짜리 와인이 등판한다. 보통 와인 한 종류의 첫 주문량은 3,000병 정도인데 이마트는 스페인과 칠레 와인을 평소보다 300배 이상인 100만병씩을 주문 약속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여기에 연간 3만개 정도 팔리던 다이알 비누도 50만개를 주문 약속해 35% 싸게 팔 계획이다. 바디워시 제품은 노브랜드 등의 전문점과 80만개를 통합 구매하는 형태로 가격 경쟁력을 높여, 시세 절반 가격이면 구매가 가능하다.
이마트 측은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새로운 외국 구매처를 찾는데도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피넛버터의 경우 기존에는 미국이나 중국에서 들여온 상품을 주로 판매했지만 세계 2위 땅콩 산지인 인도의 신규 구매처를 발굴하면서 50% 싸게 내놓을 수 있었다. 식품건조기는 세계 1위 초저가 할인점인 독일의 ‘알디’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오는 10일부터 국내 유명브랜드 대비 55% 저렴한 가격에 팔 예정이다. “PB(자체브랜드) 상품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쪽보다도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이마트 설명이다.
군살을 쏙 뺀 것도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와이파이나 스마트 기능을 뺀 대신 해상도만큼은 손색없는 ‘일렉트로맨 HD TV’는 40% 싼 가격에 9월 중 선보일 예정인데, 상품의 본질 가치에 집중하고 부가기능은 간소화해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이마트는 이런 초저가 상품을 올해 200개에서 시작해 앞으로 500개까지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손해 보며 싸게 파는 건 어느 업체든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적정 수준의 이윤을 확보하면서도 소비자에게 가격 면에서 확실하게 이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량으로 주문한 제품이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재고가 쌓여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철저한 준비 끝에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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