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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펜션 전 남편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2개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6월 1일 오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고유정(36)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제주동부경찰서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범인이 체포됐고, 범행도 자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만간 일단락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고유정이 체포된 다음날 4개월 전인 지난 3월 2일 충북 청주서 의붓아들 사망사건도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고유정이 이 사건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어 6월 4일 고유정이 긴급체포된 지 4일 만에 전 남편을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고 바다 등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되고, 엽기적인 범행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범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평범한 30대 주부가 범인인 점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가 완전범죄를 꿈꾸며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방법으로 저지른 범행행각은 전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고유정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가 최소한 유족들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가졌지만,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반성은커녕 수사과정에서 변명과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고유정에 대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들의 친부이자 한때 함께 사랑했던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훼손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싫었다. 오죽하면 고유정 말고 공범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까지 품을 정도였다.
고유정은 유족들이 2개월 넘게 피해자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찾기를 원하고 있지만, 이같은 바람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형사와 검사들이 고유정의 변호사를 통해 여러차례 설득에 나섰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불과 며칠 전에 자신의 저지른 엄청난 일을 잊는다는 게 있을 수 없는 만큼, 결국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시신 없는 재판’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내린 파렴치한 결정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는 12일부터 고유정에 대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단순하다. 검찰이 제시한 계획적인 살인에 맞서, 고유정측은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고유정측이 불리한 상태다. 이미 살인혐의에 대해 인정했고, 범행 이전에 졸피뎀을 비롯해 각종 범행도구를 미리 구입한 점, 범행 관련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점 등 계획적인 범행임을 가리키는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고유정 주장대로 우발적인 범행이라면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어떻게 알고 사체 훼손과 범행 현장을 청소할 때 사용할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했는지,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 범행의 가장 명확한 증거인 피해자의 시신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고유정측이 현재까지 밝혀진 증거들을 뒤집을만한 이유를 내놓지 못할 경우 재판은 예상과 달리 쉽게 끝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으로 보는 검찰의 판단을 법원이 받아들일 경우 고유정은 2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을 수 있다. 반면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지만 법원이 고유정의 주장대로 우발적인 범행을 인정한다면 형량은 대폭 낮아진다. 앞서 지난달 23일 열린 첫 재판에서 고유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12일에는 법정에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피해자 유족들도 함께 자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유정이 이날 자신을 위한 변명 대신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까?
김영헌 호남ㆍ제주본부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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