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맞은편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 찰코에는 눈 덮인 험준한 산과 광활한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1934년 지어진 집이 있다. ‘란초 베야 비스타(Rancho Bella Vistaㆍ아름다운 풍경)’로 불리던 집은 한때는 멕시코 전 대통령 부인의 별장이었고, 한때는 유명 영화배우의 주택이었다. 부자들의 집이었던 이곳이 가난한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은 1991년. 고(故) 알로이시오 슈월츠(1930~1992) 신부가 집과 인근 땅을 매입해 멕시코 빈민 아동을 대상으로 자립 교육을 하는 무료 기숙학교를 세운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선종한 지 26년 만인 2018년, 그의 정신을 기리는 피정센터를 한국의 건축가들이 지었다. 미국 출신인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과 인연이 깊기에 의미가 있는 일이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전쟁 후인 1957년 부산에서 전쟁 고아와 부랑자를 돌보기 시작해 이 일에 평생을 바쳤다.
신부가 만든 찰코의 기숙학교(소녀의 집)는 전 세계 빈민 아동 공동체인 ‘소년ㆍ소녀의 집’ 중 하나다. 신부가 1964년 빈민 아동, 노숙인, 미혼모 등을 도우려 설립한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에 참여한다. 현재까지 필리핀(1985), 멕시코(1991), 과테말라(1997), 브라질(2002), 온두라스(2012), 탄자니아(2018) 등 7개국 15개 도시로 뻗어나갔다. ‘소년ㆍ소녀의 집’에서 자란 아이들만 20만여명. 현재 수녀들이 돌보는 아이들도 2만여명에 이른다. 찰코의 ‘소녀의 집’은 1990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생전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마리아 수녀회는 이 터에 알로이시오 신부를 기억하는 건물을 짓길 원했다. 찰코의 ‘소녀의 집’을 운영하는 정말지 수녀는 “수십 명에서 시작해 현재는 약 3,400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립을 꿈꾼다”며 “아이들이 이 곳에서 덕행과 믿음을 키우도록 해준 알로이시오 신부의 정신과 삶을 기념할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빈민촌에 종교시설을 짓겠다는 건축가가 없었다. 지역 건축가에게 의뢰했지만 건축의 성격과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수녀회는 한국 건축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건축가가 외국에 종교시설을 지은 일은 유례가 없다. 그럼에도 우대성ㆍ조성기ㆍ김형종 건축가(㈜오퍼스 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기로 했다. 이들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인 ‘은평의 마을’(2010), ‘마리아 수녀회 수녀원’(2011), 아동 양육시설인 ‘수국마을’(2013), ‘알로이시오 가족센터’(2013) 등을 설계해왔다. 최근에는 가회동성당을 설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우대성 소장은 “건축 문화가 다른 이국에서 작업하는 것은 모험이었다”면서 “‘왜 내가 이걸 해’ 라는 생각보다 ‘내가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운명처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애초 이 터는 면적이 33만여㎡(약 10만평)에 달했지만 대부분 허허벌판이었다. 오래된 주택과 아이들의 기숙사와 자립을 위한 교육 시설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우 소장을 비롯한 한국의 건축가들은 2016년 설계를 시작해 완성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성당, 수녀원, 창설자 기념관,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이 모인 피정센터 ‘비야 알로이시오(Villa Aloysius)’가 어렵게 완공됐다.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던 농장 주택과 기숙건물, 농장 창고 주변에 성당과 수녀원, 창설자 기념관, 게스트하우스 등을 지어 공간을 연결했다.
센터 설계의 핵심은 ‘있던 것에 대한 존중’이다. 우 소장은 “농장 주택이 근거지가 되어 남미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업이 시작됐다”며 “땅이 갖고 있던 것을 존중해서 새로 짓지만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 같은 건물이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집에 사용된 아치 벽돌, 교육시설이었던 농장 창고 외벽의 붉은 벽돌, 타일과 천창 등이 모두 남겨졌다. 수십 년 된 나무 한 그루조차 피해서 성당 등 새로운 건물의 위치를 조정했다.
새로 지은 공간은 기존 것을 닮아 검박하다. 센터 내 중심 기능을 하는 성당은 외벽을 하얗게 칠한 네모 반듯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수녀회 창설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 지어진 독립 성당이다. 이전에는 공간이 부족해 체육관 등에서 미사를 올렸다. 성당 내부는 하얀 벽에 뚫린 네모난 작은 창과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물들여진다. 내부 장식 없이 신도석과 제단만이 단출하고 정갈하게 마련됐다. 성가대석도 없다. 경건하되 화려하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다. 성당 주변에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수녀회 사무실 등이 한결같이 단정하게 놓여졌다.
그간의 건축 과정을 담아 최근 책 ‘비야 알로이시오’(픽셀 하우스 발행)를 펴낸 우 소장은 “건축가의 이상을 실현하기보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영성과 수녀회의 쓰임을 위한 공간”이라며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이 그 장소를 잘 쓰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완공된 이후 ‘비야 알로이시오’를 찾은 방문객은 1,000명이 넘는다. 지역 내 새로운 명소가 됐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무는 아이들과 수녀들, 직원들의 반응이 뜨겁다. 정말지 수녀는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꼭 필요한 공간을 넓고, 밝게 만들어줬다”며 “살면서 매일 감동받고, 알로이시오 신부의 정신과 삶을 공간을 통해 깊게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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