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은 1964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에겐 전환점이 된 이벤트였다. 3년 여 준비기간 도쿄 중심지를 새로 짓다시피 한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더 이상 패전국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개회식 하이라이트인 최종 성화주자의 주인공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히로시마 근교에서 태어난 ‘원폭 소년’ 사카이 요시노리였다. 일본은 히로시마 태생 마지막 성화주자를 통해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지우고 반대로 피해자임을 부각시키려 했다. 잔인한 침략을 일삼던 일본은 왜 핵이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덮어둔 채 되레 자신의 피해를 세계 만방에 고하는 일에 열중했다. 올림픽은 그것을 홍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올림픽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그 존재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도자들은 올림픽을 정치 선전의 장으로 활용해왔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된 대회였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는 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지위와 아리안족의 우월함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려 했다. 거액을 들여 10만명 규모의 거대한 스타디움을 건설했고, 올림픽 최초로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베를린까지 7개국 3,000여명의 주자에 의해 봉송하도록 했다. 대회 개회식에는 나치의 상징 깃발을 단 거대한 비행선이 메인스타디움 상공을 맴돌며 위용을 뽐냈다. 히틀러는 대회 기간에도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멈추지 않았고, 유색인종의 선수들에게 노골적으로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56년만에 두 번째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감은 크다. 이번 올림픽에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부흥의 의미를 강조한다.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 폐허가 됐던 곳에서 올림픽을 완벽하게 치러내, 대지진과 원전사고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전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쳐 보인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야구 개막전과 소프트볼 예선 라운드 6경기를 후쿠시마 아즈마 스타디움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 경기장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심각한 방사능 유출이 있었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67㎞ 떨어져 있다. 조직위는 또 후쿠시마 등 방사능 피해지역에서 자란 쌀과 채소 등 농수산물을 올림픽 선수촌 등에 식자재로 공급할 계획이란다. 방사능에 오염됐던 이 지역이 완전히 치유됐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겠지만 일본인들조차 안전하다는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민간연구소나 그린피스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사고 이후 해당 지역에선 각종 질병이 크게 증가했고, 여전히 방사선 피폭 위험도도 높다.
최근엔 후쿠시마 원전 지하의 1만8,000톤에 달하는 고농도 핵물질 오염수가 통제되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도 전해졌다. 이처럼 원전사고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통제조차 확실치 않다. 원전의 안전은 막연히 선전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일본의 무리한 욕심에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만 방사능 공포와 또 다른 싸움을 벌이게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 한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카드를 꺼내 들며 경제적 도발을 하고 있다. 평화의 제전을 앞두고 주변을 살피기는커녕 인접 국가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지배자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림픽이 채 1년도 남지 않았지만 가까운 이웃에서 벌어질 스포츠 축전은 기대 보단 우려만 키우고 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또 어떤 기억을 지우려 할 것인가. 애초 지울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지우려 들 때엔 종이가 찢어지든가 지우개만 부러질 뿐이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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