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고산 지대인 돌로미티 산맥 주변을 여행하다 특이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어 같지도 않지만 이탈리아어와도 거리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들이 쓰는 언어가 라딘어(Ladin language)라고 했다. 이탈리아 영토지만 거리 표지판이나 관광지 안내문 등에 이탈리아어 독일어와 함께 라딘어가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여행기간 동안 묵었던 산장의 주인 부부도 라딘어 사용자였지만 영어 등 외국어에 능숙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만나는 관광객들은 ‘모르겐’ ’봉주르’라며 서로 인사를 건넸다.
□ 라딘어는 인도유럽어족 중 라틴어에서 갈려 나온 언어다. 라딘어는 이탈리아 북부 등 알프스 산간 지대에서만 주로 쓰인다. 돌로미티 지역은 오스트리아에 속했다가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이탈리아로 귀속됐고 집 모양이나 동네 풍경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풍에 가깝다. 최근 돌로미티 지역의 코르티나 담페초는 밀라노와 함께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이 지역은 한때 오스트리아 티롤에 속한 바 있어 지금도 남부 티롤로 불린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탈리아보다는 유럽이나 남부 티롤에 대한 귀속감이 크다.
□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이탈리아 정부는 1972년 이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여전히 분리독립 움직임이 없지 않다. 1950~1960년대에는 분리독립 세력의 테러가 수시로 발생했고,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는 정당도 있다. 지난해 말에는 우파 극우 연립정부가 집권한 오스트리아가 독일어와 라딘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 국민에게 오스트리아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고 유혹하는 등 분리독립을 부추기는 외부 세력도 있다. 이탈리아가 강력 항의하면서 잠잠해졌지만 논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 라딘어는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쪽에서는 게르만어, 남쪽에서는 이탈리아어의 협공을 받으며 사용 지역이 좁아져 지금은 고도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18개나 되는 돌로미티 산맥 지역에서만 사용된다. 4만명 안팎으로 줄어든 라딘어 사용자들은 근면성실하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 이 지역은 천혜의 관광지로 자리 잡아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소득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도발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라딘족의 힘겨운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비약일까.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