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의 병간호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그랬습니다.”
20년전 교육 공무원을 정년 퇴직한 70대 남성이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연금 생활로 부족함이 없었고 병간호를 마다 않는 자녀들도 있었지만, 더 이상 병 간호를 하기에는 너무 지쳤고, 자식에게도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9일 오후 3시쯤 부산진구 양정동 자신의 주거지에서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집에서 치료를 받던 아내 B(79)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20년 전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를 하다 정년 퇴직했다. 아내 B씨가 아프기 시작한 것도 그 해부터다. 심장질환을 앓았던 B씨는 이 해에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B씨는 여러 차례 병원 진료를 받았으며, 입ㆍ퇴원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B씨의 병간호는 오로지 A씨의 몫이었다.
B씨의 건강 상태는 이식한 심장 판막이 수명을 다한 5년 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재수술이 필요했지만 노령인 B씨에게 재수술은 큰 부담이었다. 이후 수술 없이 치료만 받던 B씨는 지난 4월 담도암이 간으로 전이돼 말기 암 판정까지 받았다.
B씨가 입원한 대학병원에서도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퇴원을 종용했고, 2차 의료기관인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B씨가 요양병원에 있기를 거부해 B씨는 자택으로 돌아왔다.
A씨는 B씨를 극진히 병간호했다고 전해졌다. 아들 2명과 딸 1명인 자녀들도 수시로 A씨를 찾아와 병간호를 도왔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50대 미혼인 막내아들이 A씨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며 병간호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도암 말기 판정 이후 B씨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A씨와 자녀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몇 일 전부터 B씨는 거동을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면서 “20년간 병간호로 A씨는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은 듯 하고, 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보는 것 또한 상당한 괴로움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A씨는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병세가 악화돼 B씨가 숨졌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자녀들은 집으로 와 119에 “어머니가 노환으로 숨진 것 같다”며 신고했다.
119와 함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검안 과정에서 목이 졸린 흔적을 발견하고 A씨를 추궁, A씨의 자백을 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의 병간호가 힘이 들었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연금이 나오는 데다 거주하고 있는 집도 자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B씨의 시신부검을 의뢰했으며, 정확한 사건 경위와 범행동기를 조사 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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