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그간 수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알려주지 않았던 '구속영장 신청사실'을 앞으론 피의자와 그 변호인에게 즉각 알려준다. 피의자가 더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경찰청은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피의자와 그 변호인에게 영장신청 사실을 비롯해 주요 수사 진행 상황을 정식으로 통보해 주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30일 밝혔다.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인에 대한 통지를 확대하라'는 경찰청 인권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그간 경찰 수사관은 피의자에게 구속영장 신청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검찰이 영장을 기각하거나 보완 수사지휘를 할 수도 있고 자칫 통보 과정에서 수사 취약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피의자 변호를 맡은 변호인이 경찰 조사 때 참여하겠다고 신청하면 조사날짜와 장소 정도만 알려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호인들은 피의자 신변에 가장 중요한 사실인 '구속영장 신청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는 등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 경찰은 영장을 신청할 때 '어떤 혐의로 영장을 신청했다'는 식의 영장신청 사실을 비롯해 △영장신청 결과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 일정과 결과 △사건이 송치·즉결심판 등으로 종결된 경우 사건처리결과 등 수사 진행 과정을 모두 피의자와 변호인에 알려주기로 했다.
경찰은 이번 조치로 피의자의 방어권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걸로 기대하고 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할지 말지를 검토하는 기간이 최대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피의자로선 이 기간 동안 검사에게 서면이나 구두로 변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전엔 법원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오라고 통보하기 전까지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지 모른 경우도 많았다"며 "앞으로 경찰이 영장신청 사실을 정식 통보하는 만큼 일단 영장부터 신청하고 보자는 식의 수사관행이 많이 개선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피의자가 역으로 이용해 증거인멸에 나서거나 미리 도주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통보 내용에 구체적인 수사내용이 담기지 않고 영장을 신청할 단계면 이미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라 증거인멸 우려는 없을 것"이라며 "혹시라도 도주하면 100% 영장이 청구돼 수사관 입장에선 오히려 더 고마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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