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6.5℃] 징용 배상이 보수의 자존심이다

입력
2019.07.30 04:40
26면
0 0

※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2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가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국내로 봉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2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가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국내로 봉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이 싫었다. 광우병? 불도저? 4대강? 세월호? 불통? 블랙리스트? 그런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되묻고 싶다. “정말 그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나라를 이끌리라고 생각했나요?”라고. 어쨌든 그런 사람들을 뽑은 건 우리 선택이니,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치할 권리(?)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간단히 말해 이명박 뽑았으니 삽질 좀 하고, 박근혜 뽑았으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레이저만 쏠 게 아니라 불러다 주리도 틀고 할 법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싫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적어도 ‘한강의 기적’을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라면, 1960~70년대 함께 땀 흘렸던 그 세대들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건 말하자면, 보수의 자존심 문제라 생각한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명박ㆍ박근혜 두 정권 아래서 제대로 된 노년층 대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나 박수치고 지지를 보냈는데도 그랬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제 잘난 척하거나,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키워놓은 나라인데“ 중얼거린 게 전부였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명박ㆍ박근혜 두 대통령이 광주, 제주처럼 한국 현대사의 한이 어려있는 곳에 가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싹싹 빌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진보가 그러면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나쁜 짓이었겠지만, 저들이 그랬다면 국민 대통합의 참다운 한 길이라 찬사 받았을 게 분명하다. 극좌 선동꾼이 극우 선동꾼으로 변신했을 뿐인데 ‘뉴라이트’라 치장해주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운운하는 분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문제로 촉발된 친일ㆍ반일 논란은 그 자체가 웃긴다. 문제는 친일ㆍ반일이 아니라, 보수의 자존심이다. 간단하다. 나라가 제 구실을 못해 희생양이 된 이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보수다. 경제성장이 그저 온전히 제 덕인양 여기는 한국 보수 아니랄까봐 이번엔 아예 대법원 판결 자체가 문제라는 둥, 국제정세에 능통한 개명한 코즈모폴리탄 코스프레나 한다. 일본 보수는 이 문제가 자신들이 그토록 합법이라 강변하는 한반도 식민지화의 산물임에도, 그저 청구권 협정으로 다 끝났다고 회피하려 든다. 바다 건너 사이 좋게 합동으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보수다.

개인적으론 일본 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의 책 ‘일본 양심의 탄생’(동아시아)를 추천하고 싶다. 저자 오구마 에이지가 이 책에서 다루는 건 아버지 오구마 겐지 변호사의 삶이다. 겐지 변호사는 패전 뒤 정부를 상대로 전후 피해 배상 소송을 진두 지휘했다. 처음엔 일본인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한국인과 중국인 등도 지원한다. 겐지 변호사의 논리는 간단하다. 그 어느 누구라도 일본이란 국가의 이름 아래 동원되어 희생당했다면, 그에 합당한 배상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했을 때에 “비로소 일본이라는 국가의 신뢰가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겐지 변호사는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늘 거론되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같은 좌파인사가 아니다. 아베의 외조부이자 일본 극우의 상징으로 꼽히는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처럼, 패전 뒤 소련군에 억류돼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된 경험도 있는 반공인사다. 조국 일본이 멋지게 성장하길 바라는, 애국심을 소중히 여기는, 굳이 따지자면 일본의 보통 우익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이, 나라의 영광을 팔아 동원하고 희생시켰던 보통 사람들을 외면하는 걸 차마 지켜볼 수 없었을 뿐이다. 이런 겐지 변호사가 오늘날 아베 총리를, 한국 보수를 본다면 대체 뭐라고 할까.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줄 사람이 이렇게도 없나 싶다.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