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12)] 사아가세이예드로 향하는 자그로스 산맥
자그로스 산맥에서 양들과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 ‘음, 오늘의 풍경도 참 그럴싸하군.’
이란 중서부 사아가세이예드 대략 위치. 구글맵 캡처.

모순으로 가득한 나라…이란의 숨겨진 심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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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인가? 싸움하듯 드높은 여성들의 목청에 잠을 깼다. 어젯밤 한 이불을 덮고 잔 엄마와 사촌과 그 사촌이 눈곱을 후비며 대화하고 있다. 세상의 보물로 불리는 아이들은 놀랍다. 이 소음을 자장가 삼아 곤히 잠들어 있다.

간밤의 어둠은 깨끗하게 벗겨져 있었다. 자그로스 산맥의 뾰족한 설산에 눈을 찡긋했다. 설빙이 녹아 흐르는 골짜기 위로 서정적인 초원이 펼쳐지고, 겨울 때를 벗지 못한 잿빛 암벽 산줄기가 어깨를 쩍 벌린다.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화의 원근감이 명징하다. 현재 위치는 해발 2,000m, 기지개를 켜며 숨을 길게 들이켰다. 신선한 공기에 폐까지 맑아진다.

오늘은 기어코 어제 실패한 사아가세이예드(Sar Agha Seyyed)까지 가보리라. 이틀 전 폭우가 내려 가뜩이나 변변하지 못했던 비포장도로가 난장판이 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렸지만, 그 길을 헤쳐갈 구식 픽업트럭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짐칸에 올라탔으니 명실공히 오픈카다. 승차감 제로, 울렁증과 현기증은 고스란히 승객의 몫이다. 뭐든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차는 운전기사의 호기만큼 요동쳤다. 목가적인 풍경에 한눈을 팔다가는 자칫 불의의 사고를 당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안전의 의무를 승객에게 지우는 픽업트럭.
인간이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컬러의 조화. 차는 요동치는데 풍경은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매일 생존을 위한 노동에 익숙한 바흐티아리 유목민. 남녀노소 할 것 없다.
대가족의 이동을 위해 준비 중인 당나귀들. 고생이 많다.
어서 와, 유목민 집은 처음이지? 안방과 부엌, 헛간까지 분리된 호화(?) 주택.

용암처럼 흘러내린 듯 하얀 눈 줄기를 뻗은 산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풍경의 방점은 역시 바흐티아리 유목민이다. 여름 동안 이들은 자그로스 산맥의 물과 풀에 의지해 살아간다. 특히 양이나 염소 젖을 식량으로 하는 유목민에게 목초는 핵심적인 생활 조건이다. 가축이 밑천의 전부다. 전세 아니면 월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다수 도시민에 비하면, 오히려 세상에 빚진 것 하나 없는 부자일 수도 있겠다. 하늘을 지붕 삼고 산을 터전으로 닦는다. 하지만 겨울이 닥치면 강추위와 폭설을 피해 좀 더 따뜻한 후제스탄(Khuzestan) 지역으로 미련 없이 떠난다. 자연은 결코 그들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다. 동행하되 두려워할 줄 안다. 픽업트럭은 당나귀에 짐을 싣고 막 이주를 시작한 유목민 가족을 지나쳤다. 짐이 참 단출하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삶이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된 여행자다. 바람의 사람들이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멋쟁이 백발 할아버지는 사냥총까지 꺼내 와 카리스마 넘치는 포즈를 취했다.
가죽 부대인 ‘마슉’으로, 바흐티아리 유목민은 안정된 식량을 챙기게 된다.
거친 기후와 토양을 견디는 힘겨운 삶에도 아이들의 표정에는 구김이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 아이의 눈망울엔 문명 세계에서 온 여행자의 삶이 더 측은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유목민의 집을 방문했다. 겉보기엔 (우리 기준에서) 고된 삶을 읽기 어려웠다. 바흐티아리 전통 의상을 입은 어르신이 맞이한다. 검은 펠트 모자인 ‘콜아흐(Kolah)’를 정수리에 얹고, 울 소재의 ‘츄카(Chuqa)’라 부르는 수제 롱베스트를 둘렀다. 문 밖으로 나서면 산 전체가 정원이다. 산에서 구한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나뭇가지로 삼각대(말라ㆍMalar)를 만들어 ‘마슉(Mashk)’을 대롱대롱 매단다. 마슉은 허브와 햇빛을 이용해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부드럽게 만든 부대다. 긴 시간 동안 마슉을 요람처럼 흔들어 우유를 보관하고 버터와 요거트를 추출해낸다. 염소나 양 젖의 유통기한을 늘이는 그들만의 유가공법이다. 집은 튼튼한 나뭇가지를 이어 붙인 지지대 위로 천막을 씌워 땅에 단단히 고정한 형태다. 식기 외에 집안의 가재도구는 대부분 보따리로 꽁꽁 싸여 있다. ‘바흐티아리’는 ‘행운의 동반자’라는 뜻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자, 순하면서도 때론 가혹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언뜻 스티로폼처럼 보이는 단단한 설빙 동굴. 뚝뚝 굵은 눈물을 흘린다.
설빙 동굴 안은 천연 냉장고다.
설산 아래 이 잘못된 만남을 해결하기 위해 10여명이 동원됐으나 허사였다. 진흙탕에 낀 픽업트럭은 어떻게 되었나(feat. 김영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다시 풍경 영화가 시작됐다. 고지대로 오를수록 좌측에만 편중된 풍경이 우측에도 상영된다. 설빙이 만든 키 낮은 동굴을 여럿 지나친다. 어느 동굴이든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작은 냇가를 만든다. 자연히 도로는 질퍽거렸다. 어젯밤 돌아선 곳이 이쯤 이었을까. 덤프트럭 한 대가 기울어진 채 진흙탕에 쿡 박혀 있다. 우리를 태운 픽업트럭 기사는 양떼도 지날 수 없을 것 같은, 덤프트럭 옆 진흙탕 길을 가겠노라 호기를 부렸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다. 트럭과의 잘못된 만남, 꼭 낀 채 한 몸이 되고 말았다. 코앞이 낭떠러지다. 희극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덤프트럭에 가득 실린 양 떼가 울고 있었다. 우리도 울고 싶었다.

진흙탕 비포장도로에 한 시간째 서 있다. 어제 한 이불을 덮고 잔 소녀가 사아가세이예드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말이 예언처럼 다가왔다. 때론 포기해야 할 순간이 있는 법. 결국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대신 그곳에서 태어나 가이드로 활동하는 호자트와 테헤란에서 온 사진작가 미나 커플을 만나 하산했다. 그 둘로부터 사아가세이예드에 대한 사진과 스토리를 간접 경험한다. 겨울이면 짐을 싸는 바흐티아리 유목민과 달리 사아가세이예드 주민들은 곰처럼 겨울을 난다고 했다. 겨울엔 성인 키만큼 내리는 폭설로 이 도로마저 완전히 닫힌다. 외부로 닿는 유일한 비밀 도로(!)가 하나 있는데, 테헤란까지 16시간이 걸린단다. ‘자발적 고립’은 우리의 시각일 뿐이겠지. 호자트는 오히려 무소유로 만족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다.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바흐티아리 유목민의 세상.
저마다의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때론 다시 올 핑계를 만들어주는 여행지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만큼은 다시 올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그로스 산맥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오래 그리고 깊이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세게 분다. 이때까진 몰랐다. 2주간의 이란 북서부 로드 트립에서 그날의 고난은 가벼운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란에서 렌터카 여행 법

렌터카 비용은 하루 30달러 선이다. 대여 날짜가 길어야 협상에 유리하다. 일단 차를 빌리면 기존에 배웠던 도로 상식은 쓸모가 없다. 무조건 성질 급한 사람이 우선이다. 항상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를 긴장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다만, 산유국 이란의 기름값은 물값과 비슷하다. 말도 안되게 싸다. 보통 리터 당 1만리알(공식 환율로 약 280원이지만, 실제 통용되는 가치로 치면 86원에 불과하다)이다. 가스는 5배 저렴해 2,000리알(약 17원)이지만, 안전성 문제로 가스 차가 도심 외곽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사아가세이예드로 가는 버스가 있긴 하다. 셰이흐알리한 폭포가 있는 마을에서 출발하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가는 것도 문제지만, 언제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대신 픽업트럭을 빌릴 수 있다. 우리의 경우 50만리알(4,200원)로 협상하고 출발했으나, 사고 지점에서 500만리알(4만2,000원)이라 우기는데 당하고 말았다. 말이 바뀔 수 있느니 가격을 명확히 써서 협상할 것. 호자트(인스타그램 @saraghaseyyed_hojat_dadvar24) 같은 로컬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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