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명성에 가려 덜 주목받지만, 그의 아내 마리안네 베버(Marianne Weber, 1870.8.2~ 1954.3.12)는 여성 사회학 분야의 선구적 학자이자 페미니스트였다.
막스 베버는 1904년 주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을 펴냈고, 1907년 마리안네는 ‘법에 반영된 아내와 어머니의 지위(Wife and Mother in the Development of Law)’란 책을 썼다. 그 책은 고대 이후 결혼 여성이 감당해 온 법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변천을 고찰한 거였다. 그는 “결혼이란 권력과 사적 친밀감 사이의 복잡하고 끊임없는 협상의 과정”이며 “돈과 여성의 일, 성생활이 그 협상의 결정적 문제”라고 썼다. 마리안네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독일 제3제국, 그 이후까지 남편 전기를 빼고 7권의 책과 다수의 논문을 썼다. 대부분 가부장제 사회의 결혼과 가사노동, 여성의 지위에 관한 거였다.
외과의사 아버지와 부유한 섬유사업가 가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뒤 외가 친척들의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 16세 무렵 막스 베버를 만나 21세에 결혼했다. 한넬로레 슐라프가 쓴 ‘지성인의 결혼’이란 책에 따르면, 베버 부부는 6년의 나이 차이와 결혼 전 스승-제자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삶에서든 학문에서든 (성적 자유를 포함하여) 각자의 자유에 기반한 대등한 동반자적 관계를 전제로 결혼했다고 한다. 베버가 베를린대와 하이델베르크대 등에서 강의하는 동안 마리안네는 자신의 연구를 지속했고, 베버가 정신쇠약으로 공적인 일에서 물러나 있던 1898~1904년의 6년 동안 마리안네는 정치 등 대외 활동을 했다. 첫 책 ‘피히테의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연관성’(1900)도 그 시기에 출간했다. 그는 1918년 창당한 좌파 자유주의 성향의 독일민주당(GDP)에 가담했고, 바덴의 연방 주의회 첫 여성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부부에겐 아이가 없었지만 자살한 시누이의 자녀 4명을 입양해 키웠다. 막스 베버는 자신의 제자이자 마리안네의 친구인 엘제 야페(Else Jaffe)와 내내 혼외관계를 지속했다. 물론 마리안네도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에게 혼외 연인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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