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서양인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벡패커’(Begpackerㆍ구걸(beg)과 배낭여행(backpacker)의 합성어) 붐에 동남아 국가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부유한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 자국의 가난한 국민들로부터 돈을 받아 여행하는데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이 있었던 데다, 그 수가 계속 늘어나자 각국이 경제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관광산업 발전도 저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8일 베트남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들에 따르면 태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벡패커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응우라이공항 출입국사무소 관계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앞으로)구걸을 하다 적발되면 각자 해당 대사관으로 보낼 것”이라고 SCMP에 말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집계되지 않고 있으며, 대사관 인계는 사실상 추방에 해당하는 조치다.
벡패커들은 주로 물가가 저렴해 생활비가 적게 드는 동남아 국가들을 공략한다. 발리를 경유지로 삼은 이들은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즉석에서 그린 그림이나 직접 찍은 사진을 팔아 여행비를 충당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노숙인 차림으로 “나는 돈 없이 세계여행 중입니다. 여행을 도와주십시오”라고 쓴 문구를 들고 거리에서 구걸한다.
인도네시아 현지 소식통은 “유럽과 북미, 호주 중심의 벡패커들이 활보하던 발리에는 최근 러시아인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며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분위기가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남아 관광 1번지로 통하는 태국도 벡패커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왕궁 등 신성한 장소에서의 구걸은 금지됐으며 자국에 입국한 뒤 구걸을 할 가능성이 짙어 보이는 외국인관광객의 경우 입국 심사 과정에서 700달러 이상의 현금 제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벡패커로 의심되는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체류 기간과 그에 충분한 보유 현금을 입증하도록 한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는 최근 부부로 추정되는 러시아 젊은 남녀가 어린아이를 내세워 여비를 구걸하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면서 벡패커들에 대한 시선이 싸늘한 상황이다.
벡패커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약간의 온도 차를 보인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만큼 이윤을 취하는 모든 행동은 금지되지만, 구걸 행위를 하다 적발되더라도 단순 경고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트남 관광청 관계자는 “현지인들의 경우 집요하게 구걸을 해 상당한 불쾌감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위협감도 주지만 외국인들은 마술, 노래 공연을 하는 등 예의를 갖췄다”고 말했다.
베트남 관광진흥청 부국장을 지낸 팜 쯔엉 르엉 박사는 “벡패커들은 주로 20, 30대 젊은이들로, 베트남 곳곳을 누비고 그 경험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올리고 있다”며 “일련의 행동은 베트남 관광을 장려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구걸을 하면서 여행할지언정, 더 많은 관광객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제지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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