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애연가 김모(37)씨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사서 피운다. 6월부터는 냄새가 없는 신종 전자담배를 사서 실내에서도 피우고 있다. 그는 “앞으로 전자담배 담뱃갑에 혐오그림을 넣는다고 해도 흡연량을 줄일 것 같지는 않다”면서 “너무 극단적인 사례들이라 저한테 닥칠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고그림을 보면 기분은 나쁘지만 금연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2016년 12월부터 담뱃갑에 부착 된 경고그림의 금연 유발효과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실제로 금연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효과는 적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전자담배에도 경고그림을 부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2017년 기준 38%에 이르는 성인 남성 흡연률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수준(23%)으로 낮추려면 금연장소 확대 등 보다 강력한 금연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28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국민건강영양조사 기반의 흡연자 패널 4차 추적조사 실시 및 심층분석’ 보고서에 담겼다. 해당 연구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흡연이력을 수집한 흡연자 47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분석했다. 조사시점에 흡연자인 360명 중 74%가 ‘경고그림을 자세히 살펴봤다’고 응답했으나 ‘그림 때문에 담배를 피우려다 멈췄다’는 응답자는 21%에 그쳤다. ‘경고그림을 골라서(덜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이 부착된) 담배를 구입했다’는 응답자는 14%였고 ‘경고그림을 가리려고 담뱃갑 케이스나 스티커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23%였다. 보고서는 “담뱃갑 그림이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고 있으나, 금연 시도까지 작용하는 효과는 약하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금연 전문가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경고그림을 부착한 목표는 직접적인 금연 유발보다는 흡연자들이 담배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흡연률을 더 낮추려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플레인 패키징’(표준 담뱃갑 포장)을 꼭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레인 패키징은 모든 담뱃갑의 포장을 단순화하고 통일해 담배회사들이 브랜드 마케팅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금연 촉진 정책이다.
조 교수는 또 보건복지부가 △담뱃값(세금) 인상 △담배광고 금지 △금연구역 확대 등 금연 효과가 큰 정책은 추진에는 속도를 내지 않으면서 담뱃갑 포장(경고그림 확대) 등 보조적 정책을 먼저 추진하는 점에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5월 담배와의 종결전을 언급하며 강력한 대책을 내놨지만 이는 이미 흡연률이 20%대로 낮아진 국가들이나 쓸 전략”이라며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담뱃값 인상 등 핵심 정책부터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보고서에 따르면 금연구역 지정으로 흡연할 곳이 줄어들어 금연을 생각했다는 응답자 비율은 76%에 달해, 금연 유도 효과가 높았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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