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 위원장 최봉태 변호사 
 “양국 판결 취지 설명하면서 일본 양심세력이 나설 수 있게 해야” 
최봉태 변호사가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인근 카페에서 "아베 총리는 경제보복의 원인으로 한국의 대법원을 들먹이기 전에 자국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일 양국이 냉전시대 사고의 틀을 벗어나 평화공존을 지향할 전환점에 서있다고 말했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일본서 씨 뿌리고 한국서 꽃 폈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최봉태(57) 변호사는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의 개인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한일 양국 사법부의 판결을 이같이 정의했다. 그는 2000년 부산지법을 시작으로 지난해 대법원의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노동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담당 변호사다.

일제 피해자와 한일문제에 남다른 발언권을 갖고 있는 그가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양측에 훈수 겸 화두를 던졌다. 배상 책임은 당연히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져야 하지만, 개인청구권의 걸림돌이 된 우리 정부도 보상에 준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만 편승해 친일프레임으로 국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폄하하거나, 개인배상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만 기대는 정치권의 다툼에 대해서는 “지금이 집안싸움 할 때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제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 20여년 싸워온 그는 사법부 판결을 경제보복으로 앙갚음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단호히 꾸짖었다. 우리 정부도 문제 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해법은 심세득인(審勢得人ᆞ정세를 잘 살피고 사람을 얻어라)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우리 대법원을 들먹이기 전에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논리로 일본인의 상식과 양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냉전적 한일 관계를 평화공존 체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는 최 변호사를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_강제징용 노동자의 개인배상 청구권 문제가 우리나라서 꽃핀 것은 알겠다. 일본서 씨를 뿌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지난 해 대법원 판결이 나기 11년 전인 2007년 4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틀 안에서 일본 정부나 기업이 강제징용 노동자를 자발적으로 구제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실질적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일본 측의 판결을 우리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재확인한 것이다. 또 1995년 이 재판의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 뒤에는 일본 변호사가 있었다. 이들 변호사는 1심 재판에서 자국 법정의 높은 벽을 실감한 후 한국에서도 소송을 제기토록 조언했다. 역설적이게도 대법원 판결에는 일본의 도움이 컸던 것이다.”

_2007년 4월 강제징용 노동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해국 사법부가 피해국 국민의 개인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또 일본 기업이 배임죄에 구애받지 않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피해자를 구제해서 전범기업 이미지에서 탈피하라는 주문이다. 아베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트집잡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국 사법부의 판결부터 따지는 것이 순서다.”

_한일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의 개인배상 청구권을 둘러싼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에서는 3가지 해석이 공존하고 있다.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과 살아있다는 반론, 개인청구권과는 관계없이 국가의 외교보호권만 소멸됐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 정부도 대법원 판결 전까지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우리 외교부에는 지금도 이 주장을 신봉하는 공무원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한일 양국 사법부가 개인청구권이 살아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3권분립 체제에서는 사법부가 최종적 권한을 가진다.”

_사법부는 보통 국가간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사법자제’의 원칙을 지킨다고 알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있어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판결에 따른 영향과 파장을 모르고 있다. 피해를 입은 국가의 사법부가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나. 가해국 사법부도 인정하는데 피해국 사법부가 개인청구권 소멸됐다고 하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된다.”

_최근 나눔의집 등 일제강제동원피해자유족총연합회가 청와대 앞에서 “우리 정부가 직접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한일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배상하는 1+1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누가 손해배상 해야 하나.

“한일청구권협약이 개인 배상권 청구의 걸림돌이 된 책임이 있으니 한국 정부가 보상에 준하는 지원을 하는 것은 적절하다. 우리 기업도 당시 일본의 차관으로 덩치를 키운 것이 사실이니 재원조성에 동참해도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본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양국 사법부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피해자 구제를 우선 못박았다.”

최봉태 변호사가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인근 카페에서 "한일 양국의 사법부는 강제징용 노동자의 피해 구제에 대해 같은 생각”이라며 “양국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_한국 정부도 1974년 청구권보상법에 따라 일부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소송을 제기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왜 한국정부에 먼저 보상이나 지원을 요구하지 않았나.

“일본에 원폭과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루는 모임이 있다. 1995년 일본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을 위한 소송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체훼손 등 피해가 아주 심한 징용 피해자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이라 동참하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하면서 일본 사회의 관심과 반향을 일으킨 것은 소득이다.”

_일본 정부는 한국을 믿지 못할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의 재판 진행과정에서 공개변론을 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일본 기업과 소송 관계자 모두 불러서 공개적으로 심리했더라면 일본 국민들이 재판의 의미와 내용, 진행과정을 알고 결과에 쉽게 승복했을 것이다. 일본이 올해 초 대법원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며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대법원 판결이 일본 최고재판소와 같은 맥락이라고 일본 국민을 설득할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이라 개입할 수 없다는 말로 일본 측의 요구를 무시했다. 중재 요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잘못을 납득시키기는커녕 약만 올리는 미숙함을 보였다.”

_국내 정치권에서는 친일논쟁이 한창이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한 여러 입장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봐야지, 친일 프레임으로 묶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권문제를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교류를 활성화해 양국의 양심세력과 젊은이들이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최봉태 변호사가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인근 도로변 '일본의 경제침략 NO'라고 쓰인 플래카드 앞에서 "아베 총리는 경제보복의 원인으로 한국의 대법원을 들먹이기 전에 자국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일 양국이 냉전시대 사고의 틀을 벗어나 평화공존을 지향할 전환점에 서있다고 말했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_일본의 경제보복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조선 숙종때 왜구의 독도침탈에 대한 과거 시험문제가 나왔다. 군사를 독도까지 보내기 어렵고, 왜구와 평화적 협상을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니 ‘심세득인’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일본 사법부 판결의 의미와 아베 정부의 편향성을 부각시키고 일본의 양심세력과 상식을 갖춘 일본인을 움직여야 한다. 일본변협은 2010년 12월 대한변협과 공동선언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를 빨리 구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일본에서는 ‘한국은 적인가’라는 논평을 통해 아베 총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양심적 일본인이 늘고 있다. 법률가인 문재인 대통령이나 도쿄특파원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을 상대로 ‘한국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한다. 아베 정부도 자국 사법부 판결에 귀 기울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도 좋을 일이다. 최근 도쿄대와 일본기자클럽에서 대법원 판결 취지를 설명했더니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일장기를 찢거나 태우고 죽창가를 부르짖으면 일본의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빌미만 줄 뿐이다.”

_향후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

“냉전의 틀에서 벗어나 평화시대에 걸맞은 공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일본 곳곳에 묻혀진 한국인 유해 송환에도 일본과 공동협력해야 하고, 일본 측은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추도비도 일본 곳곳에 세워야 하며, 교과서에도 제대로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 또 한일 모두 피해자인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서도 양국이 한 목소리로 미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양국은 평화공존을 위해 할 일이 많다.”

대구=글ᆞ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도쿄대 유학시절인 1994년 일본 변호사들이 한국인 원폭 및 강제징용 피해자 등을 위해 무료 변론 등 인권활동을 펼치는 것에 자극받아 일제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부산지법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맡았고, 2004년 2월에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외교부를 상대로 한일청구권협정 문서공개청구소송을 벌여 승소하는 등 일제 피해자 소송의 최일선에 서 있다. 지금은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소송을 추진 중이다.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