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법전에 머무는 낱말들의 집합체에 그치지 않는다. 법은 법령(法令)의 추상적 언어와 그 무기력한 단어들이 시민의 생활세계에 적용되는 과정 모두를 지칭한다. 프랑스의 노동법학자 알랭 쉬피오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법은, 예를 들면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원칙에 의해 통치되는 공화국과 같은 허구의 세계에 산다. 그러나 기술과 마찬가지로 법은 실제의 세계를 상대하며, 따라서 실제 세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법의 이런 모습을 묘사했다(‘숫자에 의한 협치’). 시민이 스스로 지키거나 합의에 의해 분쟁을 해결할 때, 법은 존재 자체로 규범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런 자율적 준수가 어려울 때 그 언어는 법원을 거쳐 이행된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재판 제도가 쉬피오 교수가 묘사한 ‘법이 실제의 세계를 상대하는’ 최후 단계다. 따라서 소송 절차와 법원 제도는 ‘실제 세계를 고려해야 한다.’
모든 법체계는 그 이상과 실제 세계에 맞는 실체법과 적절한 분쟁 해결 절차를 가져야 한다. “실체법 없는 소송법(절차법)은 공허하며, 소송법(절차법) 없는 실체법은 맹목이다”란 말은 이 점을 표현한 것이다(오세혁, ‘법철학의 관점에서 본 민사소송법’, 법철학연구 8권 1호). 민사법은 민사소송법에 의해 민사법원에서, 형사법은 형사소송법에 의해 형사법원에서, 가족법은 가사소송법에 의해 가정법원에서 다뤄지는 등 실체법은 그 이념과 인간상에 부합하는 소송 절차를 갖춰야 법체계로서 온전하게 운용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민사 법원에 의지해 규범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불완전한 법체계다. 모든 법이 그렇듯이 노동법 역시 적절한 절차와 결합될 때 더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민사법과는 다른 이념과 인간상을 전제한 노동법에서는 독자적인 재판 절차와 법원이 필요하다.
노동법원 도입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동기의 당부를 떠나, 오랫동안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이 주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건 다행스럽다. 실체법으로서 노동법이 올바르게 제ㆍ개정되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법적 권리를 침해당한 시민이 적절한 재판 절차를 통해 구제되는지도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굳이 4차 산업혁명, 플랫폼 노동과 같은 단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노동법적 이슈가 계속 제기되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동 분쟁을 다루는 법관들에게 더 전문적인 노동법적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는 점 역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현재 노동 분쟁을 다루는 재판 제도는 이런 현실에 적절한 해결책을 주기 어렵다. 노동법이 실질적으로 시민을 보호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선 노동 법리와 특성을 잘 이해하는 법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사법 제도에서 노동을 하는 시민은 소홀하게 다뤄졌다. 현재 운용되는 4개 특수법원(가정법원, 행정법원, 특허법원, 회생법원) 중 특허법원과 회생법원은 해당 법체계의 이념과 인간상보다는 기술적 필요성에 착안해 도입된 듯하다. 이들 특수법원이 다루는 실체법은 일반 민사법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 반면 노동법은 민사법과 구별되는 이념과 인간상에 터 잡아 만들어진 법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에 맞는 재판 절차와 법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법원의 현실을 보다보면, 사법 영역에서 지적재산권과 재산권 등 기업 이익은 과잉보호되고 근로자의 권리 보호는 우선순위에서 미뤄졌다고 느껴진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법원에서도, 그들의 권리를 보호할 편리한 분쟁 해결 절차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호소는 신속하게 반영된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법원의 도입은 우리 사법(司法)에서 균형을 도모하는 일 또는 노사 어느 한쪽의 이로움이 아닌 올바른 노동 분쟁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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