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용자 정보 유출 책임을 물어 부과한 50억 달러(약 5조9,000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최근 합의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정보기술(IT) 기업에 부과한 사상 최대 벌금으로, 이전 기록은 애플 아이폰 사용자 정보를 몰래 빼돌린 애플에 대해 2012년 부과된 2,250만 달러였다. 하지만 미국 대다수 언론은 종전 기록의 200배가 넘는 벌금도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페이스북 정보 유출 조사는 지난해 3월 언론들이 영국의 정치컨설팅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이하 CA)가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데이터를 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에 넘겼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는 이 정보를 이용해 유권자 맞춤형 공략으로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온라인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단순히 스팸 메일이나 광고 전화를 받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전 세계 는 큰 충격을 받았다.
□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가로 페이스북에 근무했던 야엘 아이젠스타트는 이 사건의 핵심은 CA의 불법이 아니라 페이스북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젠스타트는 미 IT전문매체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거대 사회연결망(SNS) 업체들은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폭로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이 주 수익원인 광고 유치를 위해 이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 둬야만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이용자 취향을 더 정밀하게 분석해 그에 맞춘 자극적 소식을 노출하는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편협한 정보에 둘러싸이게 되고 극단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 아이젠스타트의 지적대로 거대 SNS가 이미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SNS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괴물이 된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SNS의 힘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자제할 수 있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FTC는 벌금 부과와 함께 페이스북 경영진과 독립된 별도 조직이 데이터를 관리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 규제는 페이스북의 기술력이 쉽게 무력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못지않은 SNS 강국인 한국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상황이 아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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