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지어진 이후 매 시즌 리그오브레전드(LoL) 국내 프로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롤파크(LoL Park)’는 게임 팬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국내 다양한 프로팀의 유니폼과 선수 피규어 등이 전시돼있을 뿐 아니라 선수들의 화면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직접 숨막히는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곳의 치명적인 단점은 400여명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경기장 크기다. 매 시즌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우는 소리가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이 e스포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업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e스포츠 중계가 TV와 온라인을 넘어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프로팀 T1을 운영하고 있는 SK텔레콤은 젠지(Gen.G)와의 경기가 열린 25일 롤파크에 가지 않고도 경기를 현장감 있게 즐길 수 있는 AR 서비스 ‘점프AR’과 VR 서비스 ‘VR현장생중계’ ‘VR리플레이’를 전격 공개했다. 이날 경기에 앞서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본 T1의 페이커(이상혁) 선수는 “이제 경기장에 돈 내고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방문할 수 있는 롤파크
점프AR에서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일종의 ‘차원의 문’ 역할을 한다. 앱을 실행시킨 뒤 공간 확보를 위해 카메라로 바닥면을 인식하면, 앞쪽에 둥그런 구멍이 형성되면서 그 너머로 롤파크 내부가 보인다. 마치 마블 영화 ‘닥터스트레인지’에 나오는 포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포털을 향해 걸어 들어가면 스마트폰을 비추는 어디든 실제 롤파크 내부가 된다. 이용자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걸어 다니며 전시돼 있는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얼굴 벽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일명 ‘소환사의 협곡’이라고 불리는 그래픽도 한 쪽에 자동으로 형성되는데, 이 곳은 선수나 팬이 서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점프AR에는 현실 공간을 완전히 똑같이 가상 속으로 베껴오는 ‘e스페이스’ 기술이 적용됐다.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을 매개로 현실과 가상을 자연스럽게 넘나들게 하는 것이 목표로, ‘실감나는 간접 경험’을 위한 콘텐츠는 계속해서 추가될 예정이다. 전진수 SK텔레콤 5GX 서비스사업단장은 “롤파크를 시작으로 올해 10월엔 가상 동물원 콘텐츠를 추가할 계획”이라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경험으로 통신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집에 누워서 즐기는 롤파크 현장감
스포츠 팬들이 쾌적한 집에서 TV 중계를 보는 대신 경기장까지 찾아가는 것은 경기 내용 이상으로 현장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e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SK텔레콤이 이번에 공개한 ‘VR현장생중계’를 활용하면 집에 누운 채로도 단숨에 롤파크 VIP석에 앉아 현장 분위기를 느끼며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를 쓴 상태로 360도로 펼쳐진 경기장 내부를 둘러보면 위쪽으로는 실시간 경기 장면이 보여지는 큰 화면이 보이고, 양 옆으로는 실제 관객들이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5G 환경이라면 지연 시간 없이 실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VR로는 특별한 다시보기 서비스도 가능하다. ‘VR리플레이’ 기능은 지나간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버드아이 뷰(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적 시점)가 아닌 맵 중간중간에 설치된 ‘와드(특정 지역을 감시하는 데 설치하는 아이템)’의 시선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 단장은 “게임 속으로 직접 들어가 캐릭터들이 주변에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며 “이 서비스를 위해 아예 새로 제작하는 영상들”이라고 설명했다. ‘전지적 와드 시점’이라고 이름 붙여진 VR리플레이 서비스는 일주일에 하나씩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VR은 어지럼증ㆍ화질 극복 아직… “AR 서비스가 더 빨리 정착할 것”
실제로 HMD 기기를 쓰고 시연해본 결과 AR 서비스와는 달리 VR 서비스는 오랫동안 사용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일반 VR 영상은 햇볕이 강한 야외에서 촬영된 영상을 주로 서비스하는데, e스포츠 VR 생중계의 경우 어두운 실내를 담다 보니 영상에 노이즈가 심해 화질이 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VR의 ‘숙명’인 어지럼증도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주변에서는 “TV나 온라인으로 보면 편한데, 이용자들이 굳이 어지러움을 참아가며 VR 영상을 오랫동안 보겠나”는 반응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SK텔레콤 측도 VR보다는 AR 서비스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AR 시장이 VR 시장보다 4배 이상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 단장은 “HMD가 필요한 VR보다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AR 서비스가 문턱이 낮은 만큼, 아무래도 AR 서비스가 더 잘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일단 서비스를 모두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SK텔레콤 고객이 아닌 타사 고객도 앱만 다운로드 받으면 점프AR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고, 옥수수를 통해 VR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5G가 아닌 LTE 고객들도 즐길 수 있도록 데이터 크기도 최적화했다. 전 단장은 “돈을 번다기 보다는 이용자들이 5G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경험하게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민을 통해 콘텐츠의 질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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