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한 상산고 5년의 시간 벌었지만
자사고 폐지 움직임에 기름 부을 가능성
일방적 일반고 전환은 더 큰 부작용 초래
26일 오전 전북 전주 상산고 정문에 ‘전북의 자부심, 상산고를 지켜 주세요’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이날 오후 교육부는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부동의 결정을 내려 상산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전주=연합뉴스

상산고가 교육부의 제동으로 천신만고 끝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표면적 이유야 어떻든 상산고를 지켜야 한다는 전북 출신 유력 인사들의 힘이 상당 부분 반영됐을 것이다. 이미 청와대에선 그런 기류가 감지됐다.

상산고를 비롯해 살아남은 자사고들은 5년의 시간을 벌었다지만 그렇다고 안도할 상황은 아니다. 교육부는 안산동산고, 군산중앙고에 대해서는 자사고 지정 취소를 확정했다. 정치적 부담 탓에 상산고를 구제하긴 했지만, 자사고 폐지라는 큰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일 터. 이번 상산고 논란은 외려 자사고 폐지 움직임에 기름을 부을 공산이 적지 않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와 외국어고 폐지 공론화를 제안했다.

교육정책을 번번이 ‘공론’에 떠미는 모양새가 영 불편하지만, 그래도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동의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사고의 운명을 둘러싸고 해마다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며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다. 더구나 상산고를 비롯한 자사고들이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수월성 교육이 곧 입시기관화를 의미하는 거라면, 그걸 지지해 줘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반고 전환을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것에도 박수를 칠 순 없다. 교육은 정권의 5년 임기에 쫓기듯 서둘러서는 안 되는 백년지대계다. 자사고 폐지에는 선행돼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내로남불의 불용(不容)이다. 자사고 폐지에 앞장서 온 이 정부 핵심인사들의 자녀는 대부분 수월성 교육을 받았다. 조희연 교육감의 두 아들은 모두 외고를 졸업했고,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세 자녀는 강남 8학군 학교를 다녔다. 평가기준까지 바꾸며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를 박탈하려 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아들은 일반고를 다니긴 했지만 결국 영국 한 고액 사설 입시기관에서 공부를 한 뒤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 뿐이랴. 정부 내각 인사들 대다수의 자녀들은 외고, 자사고, 국제고, 그것도 아니면 해외 고등학교를 다녔다.

일반고로 평준화하려면,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준에 자녀가 일반고를 다녔는지 여부를 포함시키기라도 해야 한다. 빠져나갈 구멍은 여전히 많다. 해외 유학을 보내거나, 강남 8학군으로 의도적 전입을 하거나, 영재고ㆍ과학고를 보내거나. 어쩔 수 없이 일반고를 보낸 학부모들의 배신감을 그땐 어떻게 달랠 것인가.

일반고 교육 정상화 역시 너무 당연한 전제다. 일반고 교사가 수학 점수가 떨어진 학생에게 “넌 학원 안 다니니?”라고 너무 태연하게 묻더라는 지인의 전언은 공교육 불신이 단지 편견만은 아님을 보여 준다. 한 교육 전문가는 “자사고에 대해 적용하는 평가기준을 일반고에 그대로 적용했을 때,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간발의 차이로 기준점수(80점)에 못 미친 상산고(79.61점)를 일반고로 전환하려 하기에 앞서 일반고의 점수를 적어도 60점, 70점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한 학년 360명 중 275명이 의대에 갔다”는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발언은 상산고에 우호적인 여론조차 등을 돌리게 했다. 졸업생은 물론 치대, 한의대까지 모두 포함시킨 다소 왜곡된 통계였지만, “의대를 보내려고 자사고를 만든 건 아니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만했다.

하지만 ‘전국 의대를 한 바퀴 다 돈 다음에야 서울대 공대‘라는 얘기가 여전히 유효한 게 현실이다. 상산고가 의대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것에 분노하기에 앞서 상위 1%가 한결같이 의대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뭔지,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왜 많은 학부모들의 공감대를 샀는지, 그 사회적 구조를 바로잡을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순서다. “담임 교사가 반 5등 이하 학생들에게는 진지하게 입시 상담을 해 주긴 하느냐“는 자조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이런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사고 폐지는 모든 학교를 소수 학생만을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시킬지 모른다.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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