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에 임금조건 안 알려 구직자 피해
‘근로조건 명시 의무화’ 법안은 국회 계류
“대기업 경력직으로 이직하게 돼 꿈에 부풀었는데, 계약을 하고 보니 3년 경력이나 10년 경력이나 처우는 모두 신입사원이랑 같습니다. 저는 7년 경력자인데, 졸지에 신입사원이 된 거예요. 이직하면서 월급만 100만원 넘게 깎이게 됐는데, 이미 전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돌아가기도 어렵습니다. 이럴 거면 채용 공고를 할 때 경력직을 뽑겠다고 할 게 아니라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 4월 한 대기업의 전문 경력직 사원 채용(3~7년차 대상)에 응시해 최종 합격한 A씨의 사연이다. 입사하고 나서 보니 경력직 합격자들의 연봉은 모두 신입사원 수준으로 결정됐다. A씨는 “채용 공고엔 경력을 명시하고, 연봉도 경력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인사팀에선 “기존 입사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회사 내규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답만 들었다.
26일 노동계에 따르면 일부 기업이 채용 공고에 임금과 근무시간 등 구직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아 A씨처럼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채용 공고시 근로조건 명시를 의무화해 구직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법안은 국회에서 별다른 논의 없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구직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에서는 △구인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고 △구인자가 구직자를 채용한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을 거짓 광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업은 인터넷 채용광고에서 ‘근로조건은 회사 내규에 따른다’고 밝혔기 때문에 채용절차법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봉이나 근로시간, 담당 업무 등은 구직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근로조건이지만, 기업들이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하고 있어 구직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최혜인 노무사(직장갑질119)는 “대부분의 기업은 채용 공고에서 ‘근로조건은 회사 내규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을의 입장인 근로자들은 입사 전까지 내규도 볼 수 없고 처우를 묻기도 어려우니 정보가 충분한 상황에서 계약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특히 임금의 경우 채용이 확정되더라도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 구직자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개별 근로자가 계약시 내용을 꼼꼼히 살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도 구직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채용절차법’ 개정안이 5건 발의돼 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잠자고 있다. 채용 대상 업무와 임금을 채용 광고에 명시(신경민ㆍ이용득 의원안)하거나, 근로조건을 명시하는데 더해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신창현ㆍ김태년ㆍ윤종오 의원안)하는 방식이다. 최혜인 노무사는 “근로조건은 근로자가 알아야 할 필수 정보”라며 “각 기업이 채용 공고에서 월급의 정액을 적기는 어렵더라도, 상한선과 하한선을 제시하는 등 예상 가능한 정보를 주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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