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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요양원 된 요양병원… 6개월마다 환자 주고받기도

입력
2019.07.29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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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여름 부친상을 치른 김모(48)씨는 지금도 아버지가 생전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요양병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김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5월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위기는 넘겼지만 수술 후 1주일 만에 병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해줄 것이 없다”며 퇴원을 권했다.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여기서도 입원 1주일 만에 같은 이유로 퇴원을 종용했다. 집안형편상 아버지의 병수발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수소문 끝에 아버지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한 달에 60만~70만원만 내면 아버지를 ‘편히’ 모실 수 있다는 요양병원의 말을 믿고 아버지를 입원시켰지만 현실은 달랐다.

6인실 병실은 환자들의 소지품과 음식, 약품에 치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국동포 간병인은 환자 6명의 식사ㆍ목욕 수발은 물론 기저귀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입원 2개월 만인 같은 해 7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아버지 상태가 위중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실 줄은 알았지만 임종을 못한 것은 한이 됐다. 김씨는 “병원에서 한 일은 사망 당일 아침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 한 통을 한 것이 전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가 낮아 입원환자 채워야 생존 

병원마다 시설이나 서비스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김씨처럼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셨거나 모시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요양병원에 부모를 맡겼지만 자식으로 할 짓이 못 된다”고 말한다. 이유가 뭘까.

의료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노인성질환자, 만성질환자, 외과수술 등으로 인해 장기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와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사실상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수술 등 치료를 통해 응급상황은 벗어났지만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암 환자, 뇌심혈관질환자 등 중중환자들이 휴양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설립 취지만 놓고 보면 노인환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의료기관이지만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요양병원을 ‘9대 생활적폐’라고 지목할 정도로 요양병원들은 사회적인 지탄받고 있다.

이는 입원환자 수에 비례해 돈을 버는 구조 탓이 크다. 국내 요양병원들은 진료, 검사, 처방, 입원 등 실제 행한 진료행위에 따라 수가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환자의 입원일수만큼 정해진 금액을 받는 일당(日當) 정액수가제로 운영된다. 일당정액수가에 의해 환자는 중증도나 입원치료 필요성 등에 따라 7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등급별로 요양급여가 지불된다. 현재 1등급 요양병원의 경우 의료최고도는 7만6,250원, 신체기능저하군은 4만7,870원이다. 정해진 금액을 받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치료를 해야 하며, 덜하면 할수록 병원에 이익이 되는 구조다.

경기도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모든 치료는 등급별로 책정된 수가에 맞춰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을 하고 싶어도 손해가 날까 겁이나 일단 기존 약으로 버티고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는 요양병원은 오히려 망할 위험이 크다”며 씁쓸해했다. 조항석 대한요양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너무 낮게 수가가 책정돼 별반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를 입원시키는 이른바 ‘환자 고르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저질의료, 과소 진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요양병원 -박구원 기자/2019-07-28(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요양병원 -박구원 기자/2019-07-28(한국일보)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들어 장사” vs “우리라도 받아 다행” 

치료(요ㆍ療)도 부실한데 돌봄(양ㆍ養)기능마저 변질돼 ‘요양병원의 요양원화’가 심화한 것도 큰 문제로 꼽힌다. 요양병원은 질병이나 장애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노화 등에 따른 신체·정신적 기능저하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처럼 운영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굳이 입원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라도 일단 받아 병상 수를 채우면 돈을 벌 수 있는 정액제 수가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요양병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 2급을 받지 못해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는 환자 또는 그 보호자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발생한 현상이다. 3~5급 판정을 받아 요양원에 입소할 수 없지만 집에서 가족의 돌봄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현재 요양병원을 전전하고 있는 B(61)씨가 그런 사례다. 40대 초반 경미하게 뇌출혈을 앓았던 그는 완치가 됐지만 알코올의존증이란 문제가 있다. 치료를 위해 수 차례 정신과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때뿐, 퇴원하면 다시 술에 손을 대자 B씨 가족들은 2년 전 그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B씨는 환자등급으로 따지면 최하등급인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했지만 뇌출혈을 앓은 경력이 있어 ‘의료경도군’으로 분류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의료경도군으로 분류되면 등급이 올라 병원에서는 수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버림 받아 오갈 데 없는 B씨도, 아버지로 인해 더 이상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가족들도, 입원환자를 늘릴 수 있는 병원도 모두 손해 볼 게 없었다.

3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친 C(72)씨도 ‘요양 난민’이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혼자 살았지만 무릎을 다친 후 식사는 물론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힘들었던 C씨는 아들의 권유로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약간의 치매증상이 있는 C씨는 인지장애군으로 분류됐다. 그는 장기입원으로 수가가 삭감될 때마다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과거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요양병원에서는 이렇게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을 ‘업 코딩(up coding)’이라고 한다”며 “병실이 차지 않아 병원운영에 힘든 요양병원들이 이런 식으로 실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입원자’를 입원시킨다”고 귀띔했다. 그는 “환자를 6개월 이상 입원시키면 입원료의 5%, 1년 이상 입원시키면 입원료의 10%를 수가에서 차감 당하기 때문에 병원들은 6개월마다 이런 환자를 주고받고 있다”며 “사무장병원들의 경우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들 환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요양시설·요양병원 역할정립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 없는 신체저하기능군 환자는 2014년 4만3,439명에서 2016년 5만8,505명으로 34.6% 증가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총장은 “연금, 주거시설, 지역사회시설 등 노인복지 인프라가 극히 부족해, 본인부담금 20~40%만 내면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 사회적 입원환자가 쏠릴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요양병원들은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선택되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요양병원들은 “우리마저 받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치료가 필요 없는 신체저하군은 요양병원 입원보다 요양시설 입소가 적합하지만, 단순 신체기능 저하자들은 장기요양등급 1~2등급을 받을 수 없어 요양병원을 선호한다. 요양시설 입소가 가능한 요양등급 1~2등급을 받으려면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또는 상당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김주형 아주대병원 교수(대한요양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지역사회나 가정에서 이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받지 말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D씨는 “병원에 신체저하군 환자가 많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사가 나오는 등 귀찮은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오는 환자를 막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처럼 요양병원 장기입원을 통제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지역사회에서 돌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요양병원에 환자가 입원하면 의무적으로 48시간 내 입원기준에 적합한지 판정하고 주기적으로 입원 기준 적합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입원 후 61~90일까지는 1인당 329달러(약 38만원)의 자기부담금이 부과되고, 90일 초과 시에는 원칙적으로 병원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한다.

일본은 중증환자 수가는 상향조정하고 경증환자 수가는 하향 조정해 병원이 중증환자에 집중토록 했다. 여기에 입원환자는 수가의 10%를 본인부담금으로 부담하고, 180일 이상 입원할 경우 병원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공공요양병원을 설립해 요양병원의 ‘적정의료 서비스’를 구축하고 이를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 의료기관에 본보기로 제시하는 등 공적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정형준 사무총장은 “요양병원 수가체계 및 관련 법규도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했지만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최소한 권역별, 지역별로 공공요양병원을 건립하거나, 기존 민간에 위탁한 70여 곳의 공공요양병원을 지자체가 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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