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비명이 들린다… 양다리가 없는 남자가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기처럼 신음한다. 한때 다리가 있던 자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그는 반쯤 의식을 잃어 멍한 표정으로 가슴께에서 양팔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20세기의 한 군인은 전쟁의 참혹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이 경험한 감각, 생각, 감정,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과 후대에 그 실상을 알렸다. 개인은 국가 이익의 희생양이자 조국을 지키기 위한 열사(烈士)였다. 회고록은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지만 역사 안에서 자신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흔히 역사자료로 분류된다.
이 분류에 저명한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43) 예루살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르네상스 시대(1450~1600년) 참전했던 34명의 군인 회고록을 통해서다. 평민, 귀족, 황제 등 지위고하를 막론했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은 20세기 이후의 것과 크게 달랐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전쟁의 사실과 정확성을 기록하는 데에 무게를 뒀다. 자신이 참전한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심지어 어떤 전쟁인지 조차 불분명하다. 자신의 기록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한 흔적도 없다. 오로지 군인들의 명예로운 행동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식이다. 동료의 부상과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발도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죽은) 인디오의 몸에서 떼어낸 기름으로 (부상당한) 병사 열다섯 명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죽었다’(1450년경 카스티야의 귀족 디아스 데 가메스의 회고록 중)는 수준이다.
하라리에 따르면 르네상스 군인들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명예로운 행동, 즉 무훈(武勳)이었다. 이들에게 전쟁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위해 벌이는 한판 대결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만이 의미가 있었다. 역사 속에서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명예에서 의미를 찾았고, 그 의미를 남기는 것이 역사였다. 국가와 민족 내에서의 한 개인의 역사는 근대 이후 체제에서 사라졌다. 르네상스 이후는 ‘나’가 아닌 ‘우리’의 역사였다.
하라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군인 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를 동일시했다”라며 “이들은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규정하면서도 그 속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뒤 근대로 들어와 왕조-민족 역사가 역사와 개인사를 분리해 개인사를 역사 밖으로 추방하면서 개인들은 ‘우리’(역사) 안에서 ‘나’(개인)의 의미를 찾았다고 지적한다.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유발 하라리 지음ㆍ김승욱 옮김ㆍ박용진 감수
김영사 발행ㆍ516쪽ㆍ2만2,000원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인류 3부작(‘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하라리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 박사다. 2004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썼던 내용을 옮긴 이 책에서 그는 ‘우리’에 앞서 ‘나’의 의미를 되새긴다. 책을 감수한 박용진 서울대 교수(인문학연구원)는 책 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 아래에서 기억할 만한 것을 결정하는 기준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썼다. 역사와 개인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서 우리의 미래를 찾자고 주장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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