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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가서야 깨달았다, 국경이 얼마나 사소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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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가서야 깨달았다, 국경이 얼마나 사소한지

입력
2019.07.2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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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 탐사 임무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착륙선 이글의 귀환 장면. 마이클 콜린스가 모선인 사령선에서 찍은 것이다. 달과 지구도 함께 포착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 탐사 임무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착륙선 이글의 귀환 장면. 마이클 콜린스가 모선인 사령선에서 찍은 것이다. 달과 지구도 함께 포착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달을 지척에 두고도 달에 발자국 하나 새기지 못한 이가 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선장이었던 미국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2012년 사망)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사령선을 지키며 암스트롱과 착륙선 조종사인 버즈 올드린(89) 두 동료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전은 물거품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었다.

‘달로 가는 길(Carrying the Fire)’은 아폴로 11호의 또 다른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89)의 이야기다. 아폴로 11호의 모선인 사령선 컬럼비아호의 조종사였다. 그는 동료들이 무사히 사령선으로 다시 발을 들일 때까지 달 궤도를 돌며 시스템을 점검하고 관제센터와 교신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고독의 순간을 만끽했다. “나는 진정 혼자다. 내가 유일한 생명체다. 만일 인류의 숫자를 세어보라고 한다면, 30억 외에 달 반대편에 둘, 그리고 이쪽에 오직 신만이 아는 한 사람을 더해야 하리라.” 그는 스스로 ‘태초의 아담 이래 가장 외로웠던 인간’이라고 규정했다.

1974년 출간된 이 책은 콜린스가 나사(NASAㆍ미항공우주국) 우주인으로 선발되고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탁월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필치로 역대 달 탐사 우주인이 쓴 저서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책이다. 우주인 후배들은 콜린스를 우주의 시인, 철학자로 칭한다고 한다.

1969년 6월 19일 미국 케네디우주센터 우주선에 탑승한 마이클 콜린스의 모습. 아폴로 11호 발사를 한달 여 남기고 이뤄진 무중력 체험 훈련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69년 6월 19일 미국 케네디우주센터 우주선에 탑승한 마이클 콜린스의 모습. 아폴로 11호 발사를 한달 여 남기고 이뤄진 무중력 체험 훈련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우주 탐사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그러나 콜린스는 기술보다 더 위대했던 것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우주인으로 선발되고 훈련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매 순간 시험 대상이었다. 우주인으로 뽑혀도 모두가 우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우주 비행 기술과 지식은 기본이고, 사막에 가서 지질학 탐사도 하고, 정글에서 이구아나와 야자수로 배를 채우며 생존훈련도 버텨내야 했다.

이 책의 백미는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을 기록한 대목이다. 달 표면에 인류가 처음 착륙하는 역사적 순간 콜린스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철저하게 무대 뒤편의 연출자였다. 세계 7억 인구가 그 경이로운 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했지만 콜린스는 보지 못했다. 대신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직접 관측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존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은 당장 눈에 보이는 1등과 2등에만 열광했다.

그럼에도 콜린스는 “내 위치에 지극히 만족했다”고 했다. 실제로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달에 다녀온 뒤로 그는 화성 연구에 매진했고, 국립항공우주박물관장을 지내는 등 쉬지 않고 우주 연구를 개척해 왔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명세 자체에 힘들어 하던 암스트롱은 심장병을 앓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고, 올드린은 가장 먼저 달에 내리지 못했다는 열등감 그리고 목표 상실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폴로 11호 3인방의 인생은 그렇게 극명하게 엇갈렸다. 콜린스는 달 착륙 50주년 기자회견에서 영웅으로 재평가되는 것에 대해 “영웅은 병원 응급실 의사가 돼야지, 우주비행사는 자기가 맡은 작은 임무에 목숨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1969년 7월 17일 아폴로 11호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마이클 콜린스는 지구를 “가냘픈 구체”라고 정의 내리며, 보이는 것은 청색과 흰색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69년 7월 17일 아폴로 11호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마이클 콜린스는 지구를 “가냘픈 구체”라고 정의 내리며, 보이는 것은 청색과 흰색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달을 다녀온 뒤로 얻은 깨달음은 이 뿐이 아니다. 콜린스는 그토록 가 닿기를 바랐던 달에서 지구의 소중한 가치를 찾게 된다. 그가 달에서 본 지구는 한마디로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작고 가냘픈 구체”였다. 하지만 지구는 아름다웠다. 생명과 다양성이 넘쳤다. 황량하고 단조로운 달과 비교가 안 됐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들의 탐욕과 반목으로 점차 죽음의 행성으로 변하고 있다고 콜린스는 꼬집는다. “세상의 정치 지도자들이 20만킬로미터 밖에서 이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국경은 보이지 않고 시끄럽던 논쟁도 순식간에 잦아들 것이다. 차별을 중지하라고, 평등하게 대하라고 외쳐댈 것이다. 지구는 보이는 그대로 청색과 흰색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아니다. 부유층과 빈곤층도 아니다.”

국경과 이념, 계급이란 경계를 지우고 지구를 하나의 모습으로 대할 때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도 하나씩 풀릴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이다. ‘지구를 떠나 보면 겸허해진다. 인류가 우주 탐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지구를 버리려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다.’ 콜린스가 50년 전 달에서 얻은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로 가는 길

마이클 콜린스 지음ㆍ조영학 옮김ㆍ이소연 감수

사월의 책 발행ㆍ616쪽ㆍ2만8,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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