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노포기행<20>]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선간 서성거리고 있다// (…) //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 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후략)’
서울 종로구 명륜4가 94-2번지. 황동일의 시패(詩牌) 옆 계단을 올라가면 말 그대로 ‘고립된 섬’ 같은 1970년대 다방 풍경이 펼쳐진다. 투박한 천 소파, 모서리가 닳아빠진 나무 테이블, 낡은 영사기와 카메라,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빛바랜 레코드판과 DJ박스, 행남자기. 복층으로 된 2층은 허리를 숙여야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는다. “자리 먼저 잡으시고 카운터에서 주문해 주세요! 커피는 자리로 가져다 드립니다!” 가게 문이 열릴 때마다 카페보다 냉면집에 어울릴 듯한 안내가 반복된다. 평일 오후 2시, 20여 테이블이 꽉 찼다. 남자친구 손을 꼭 잡고 문을 연 20대 여성이 영화세트장 같은 이 풍경을 보고 외쳤다. “대~박!”
1956년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소설가 김승옥이 박태순과 김화영을 앉혀놓고 한국일보 등단작 ‘생명연습’을 건네며 평을 기다리던 곳, 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펼쳐진 곳, 송강호와 설경구가 연극 포스터를 찾으러 들렀던 곳.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학림다방이다.
“비엔나커피 한잔 드실래요? 나는 녹차.”
32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이충렬(64)씨가 말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설탕, 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는 학림다방의 대표 메뉴다. 뜨거운 커피 위에 얹은 크림은 인터뷰 2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을 만큼 빽빽한 밀도를 자랑한다.
‘학림’표 커피 맛 비결은 블렌딩
문 연 지 63년이 지난 다방에 20대 커플이 8할을 차지하는 비결은 ‘요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덕이 크다. 이충렬씨는 “여러 원두 섞어 맛을 내는 블렌딩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원두커피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단종커피(원두 종류가 하나인 커피)를 많이 쓰잖아요. 킬리만자로, 예가체프, 수프리모처럼 원두 한 가지를 쓰고 커피 내리는 기술 익히는데 공을 들이죠. 중요한 건 안 좋은 원두로 아무리 정성스럽게 내려도 맛이 안 난다는 사실이에요.”
학림다방표 원두는 케냐AA등 여섯 가지 원두를 섞어 볶는다. “커피도 농산물이라” 시기마다 수확하는 원두 품종이 조금씩 다르고 같은 품종이라도 일조량, 일교차, 강수량에 따라 원두 상태가 매해 다르다. “한국인은 커피 신맛보다 구수한 맛을 좋아해요. 텁텁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맛이 있어야 하죠.” 이 맛을 찾으려고 젊은 시절 하루에 커피 20잔씩을 마셨고, 덕분에 지긋지긋한 불면증을 얻었다. 요즘에는 모닝커피 한잔이면 족하다. 이씨는 “원두 맛이 그때그때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맛을 유지하려면 원두 비율을 조절 해줘야 한다. 기술이라면 그게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볶은 원두로 학림다방에서 파는 19가지 커피를 모두 만든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많이 넣어 홍차처럼 만들면 아메리카노, 원두를 드립으로 내리면 레귤러커피다. 이들 커피보다 2,000원 더 비싼 스페셜티는 원두를 듬뿍 넣어 내린 드립커피다. “그때만 해도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었어요. 한 손님이 커피 맛있는데 더 진한 커피 없냐고 묻더라고요. 한잔에 10g 들어가는 원두, 60~70g 넣어 아주 진하게 우려줬죠. 완전 미친 짓이지, 이런 멍청한 커피는 없는 거야(웃음). 근데 그 맛이 아주 특이해요. 주문한 손님도 그러더라고요. ‘이런 커피 마셔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만든 메뉴예요. 지금도 바쁠 때 그거 시키면 좀 곤란한데... 정말 맛있어요.”
이충렬씨가 학림다방을 인수할 무렵에는 인스턴트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곁들인 ‘다방 커피’를 팔았다. 단골들이 학림을 찾는 건 커피 맛 때문이 아니었고 이씨 역시 자고로 커피란 그런(인스턴트 커피) 맛인 줄 알았다.
학림의 음악과 분위기가 좋아 단골을 자처했던 일본기업 산요의 한국지사장이 어느 날 넌지시 말했다. “커피까지 맛있으면 좋을 텐데….” 그는 이씨를 자기 집으로 불러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서 내려줬다. 이 사장은 단골을 따라 일본으로 가 커피 볶고 내리는 기술을 배우고 로스터를 샀다. 원두커피 파는 곳이 드물던 1996년의 일이다.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커피 맛있는 집’으로 알려지면서 대학로에 2호점을 낸 스타벅스 직원들도 학림다방을 찾았다.
“밥도 햅쌀로 지은 게 맛있잖아요. 커피도 똑같아요. 갓 볶은 원두가 맛있죠. 그때만 해도 커피 볶는 사람, 드물었거든요. 원두커피를 잘 안 먹었을 때니까 수요도 별로 없고, 그래서 싸고 질 좋은 원두가 굉장히 많았어요.”
볶은 원두를 소분해 ‘학림다방 원두’로 일반에 팔기 시작한 것도 신선한 원두를 빨리 소비하기 위해서다. 이충렬 사장은 “아침에 원두 갈아 커피 내려 마시는 게 사람들의 소박한 기쁨인데 매일 학림다방 찾기 어렵지 않나. 요즘에는 그 마저 못하는 바쁜 사람들이 많아 일회용으로 소분한 원두 티백도 판다”고 말했다.
송강호 설경구의 신인 시절
이충렬 사장이 또 다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5월에 전화가 한 통 왔는데 자기가 학림다방 주인이었대요. 옛 단골들이 신선희씨에 대한 기억이 많아 그 분이 주인인줄 알았거든요. 언젠가 학림다방 행사를 하면 이분 초청하려고 했는데 미국서 4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우리 식구가 학림 주인이었다는 분이 나온 거예요. 어머니가 치과의사였대.”
학림이 문을 연 건 서울 동숭동에서 치과병원을 하던 의사 이양숙씨가 병원 옆 건물을 사들이면서부터다. “신선희씨는 그 치과 간호사였는데 결혼하고 병원을 그만뒀대요. 학림다방 열고 손이 없으니 거기서 일 좀 봐달라고 한 거죠.”
‘학림 누나’로 불린 신씨는 통금에 걸린 학생들이 문을 뜯고 들어와 잠을 자도, 외상을 갚지 않아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직원들도 학생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며 대화를 즐겼다. 문학도, 음악도의 사랑방으로 시화전, 음악회가 수시로 열렸다. 이곳을 기점으로 결성된 서울음악학회는 금난새, 임헌정 등 음악인을 배출했고 서울대 문리대 축제인 ‘학림제’는 이 다방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유주 이씨는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자 학림다방을 그 근처로 옮기려 했지만 물색한 땅이 공원부지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했고, 3년 후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공연기획자 강준혁씨가 1,2층을 빌려 신선희씨와 함께 학림을 운영했지만 신씨도 미국 이민을 떠났고 83년 지하철 4호선 공사로 건물이 허물어졌다. 새 건물이 지어진 후 같은 이름의 다방이 들어섰지만 적자가 누적돼 몇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주인인 이충렬씨가 다방을 인수한 건 87년의 일이다.
“제가 1955년생이니까 학림의 옛 모습을 알죠. 연극하면서 자주는 아니고 가끔 들렀는데, 원래는 일본식 건물이었어요. 새 건물이 지어지고는 레스토랑처럼 운영됐죠. 유선방송 틀고.” 학전, 연우무대 등 연극 포스터와 공연 보도사진을 찍으며 연극인들과 학림을 찾았던 이충렬씨가 주변의 권유로 학림다방을 인수한 게 1987년이다. 유사 이래 호황이 단 한번도 없다는 출판계, 연극계의 사랑방이니 외상도 많았겠다는 말에 “유명 문인, 연극인들 찾는다는 소문이 많아서 (연극인들도) 아무나 오질 못했다. 외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카페처럼 많진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작가였던 이씨는 외환위기 전까지 학림다방 3층에 암실을 만들어 연극 공연 포스터 사진작업을 했다.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 김광림 한예종 교수 등 내로라하는 연출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공연 후 뒤풀이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다. 이씨는 “송강호 설경구씨 무명때 사진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그때는 다들 젊었죠. 김민기씨도 30대 후반, 백기완 선생도 50대였고. 백기완 선생은 요즘도 날마다 오시죠. 오전에 이 자리에서 커피 한잔 드시고 저와 점심 먹는 게 하루 일과가 됐어요.”
SNS 열풍으로 제2 전성기
탁월한 커피 맛에도 ‘어르신 사랑방’에 머물던 이곳이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로 각종 모임에 적극 참여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들의 놀이터가 된 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열풍이 불면서다. 이충렬 사장은 “젊은 손님이 많아진 걸 체감한 건 2,3년 전부터”라며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맛집 연재하는 게 인기를 끌면서 이곳이 많이 소개되더라”고 말했다.
“사실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여기만큼 많이 나오는 데가 없었어요. 한데 영향이 얼마 못 가요. ‘별에서 온 그대’에 학림다방 나왔을 때는 해외 관광객들이 단체 버스 타고 찾아 와서 기념사진만 찍고 가고 해서 애를 먹었죠.” 카페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기존 단골들이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몇 년 전 커피 볶는 기계가 있던 자리에 2호점 격인 ‘학림 커피’를 열었다.
‘학림이 100년 가길’ 바라는 이씨에게 최근 희망이 생겼다. 이 씨는 “아들이 제대 후 커피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대교체가 되는구나 싶죠. 군대 갔다와서 복학 안하고 이어받겠다고 해서 도맡아 하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손님 올 때나 가끔 나오고. 직원 관리도 그렇고, 손님 응대도 그렇고 세대차가 있으니까 젊은 친구가 계승해야 학림이 100년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다행이에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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